▶쿠데타 세력의 1962년 체제, ‘정당법’
현행 ‘정당법’은 그 구조상 지역정당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정당법’은 5개 이상 시·도당을 두고 각 시·도당마다 1천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하는 전국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을 때만 정당으로 인정한다. 게다가 반드시 중앙당이 있어야 하며 중앙당의 사무실은 서울에 소재해야 한다. 이는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는 헌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당에 대한 현행 헌법의 규율과 ‘정당법’의 규제는 1961년 박정희 쿠데타 직후 등장한 것이다. 군부는 자신들의 집권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이들 조직을 해체해버렸고 나아가 입법, 행정, 사법, 전부에 걸친 중앙 독점적 권력 행사를 시도했다. 그 결과 지방자치와 지역정치는 완벽하게 통제되었다. 이때 형성된 ‘정당법’의 틀이 군부독재가 청산되고 민주화에 접어든 오늘날까지 지역정치를 방해하고 있다. 1962년 체제의 시혜를 만끽하고 있는 것은 거대 양당뿐이다. 주권자는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길도, 대신할 사람도 찾지 못한 채 정치 혐오를 느끼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정당이 각종의 이해관계를 놓고 정치적 경쟁을 하는 다원적 민주주의는 현 ‘정당법’ 체계에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정당법’의 개정을 요구한다.
▶ 지역정당의 실현은 불가능한가
우리나라에서 지역정당은 낯설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이 강력한 규제를 행하는 ‘정당법’이 더 드물다. 안정된 대의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당정치를 추구하는 선진국은 ‘정당법’이 부재하거나 규제가 느슨하다.
지역, 규모, 성격 등에서 다양한 정당 활동을 보장한 국가들은 지방자치가 활성화되어 다양한 정치결사가 지역의 의제와 정책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영국에는 중앙당과 지역정당을 합쳐 380개가 넘는 정당이 있으며 미국에는 개별 주 단위로 등록된 정당이 총 225개이다. 스페인은 무려 5,064개의 정당이 있다. 가까운 일본도 자유로운 정당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자유로운 지역정당이 가능할 때 중앙의 독점을 견제할 지방분권의 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공고한 기득권의 벽을 뚫고 지역정당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풀뿌리옥천당과 마포파티, 은평구민들레당 등이 그 예이다. 여러 지역에서 지역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분투를 계속해 왔으며 그 한계와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역정당 창당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법무부는 정당 난립과 특정 지역의 의사 형성을 추구하는 단체를 막기 위해 지역정당을 규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법무부는 난립의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에는 늘 50개 전후의 정당이 등록되어 있다. 몇 개의 정당부터가 이들이 말하는 난립인 것일까. 또한 지역의 주요 사안이 온전하게 해당 지역의 문제에 국한되는 일은 거의 없다.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문제는 주변 지역의 대기 오염과 전기세 인상의 등의 갈등을 일으킨다. 생활격차, 신공항, 지방소멸 등 지역의 사안이지만 지역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산재해 있다. 지역정당은 특정 지역의 이기심을 행사하는 단체가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다각화된 논의를 전개한다.
▶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지역정당은 지역 문제를 직시하고 지역에서 해야 할 실질적 대안을 제시할 유일한 방법이다. 지역정당은 갈등의 근본 원인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서로의 입장을 명확히 확인하게 하여 지역 간의 감정 대립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갈등의 해소가 이루어졌을 때 제대로 된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전국정당의 지역조직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국정당의 지역조직은 결정적인 순간에 지역의 이해가 아니라 중앙의 이해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정당법’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사법기관과 입법기관이 자기 책무를 방기하는 동안 지역정당과 풀뿌리 민주주의는 끝없는 위협을 받고 있다. 지역정당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주권자가 스스로 정치 결사를 조직하여 정치활동을 하겠다는 것을 막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위배된다. 양당의 기득권을 축소하고 그 빈 공간에 다양한 정당세력이 경쟁하는 사회가 곧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지역주민 간의 연대, 지역과 지역의 연대를 꿈꾸는 이들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물결을 막을 명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