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은 ‘양(量, Quantity)’과 ‘질(質, Quality)’을 넘어,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사는 ‘격(格, Dignity)’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공공 예술기획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박삼철의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한말에 이르기까지 시대정신과 생활상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우리 유물·유적 이야기 33편을 담았다. 박물관에서 못 보고 지나치는 것들, 보고도 지나치는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우리 삶 우리 예술 역사 안내서’인 이 책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삶, 즉 미맹(美盲) 탈출이 ‘잘 살기 위한’ 조건 중 하나임을, 풍부한 자료사진과 출중한 스토리텔링으로 전한다.
첫 번째 챕터인 ‘꿈꾸다! 선사시대’에서는 우리 미술사 최초로 얼굴을 그린 조개 인면상, 6천 년 전 돌을 깎아 만든, 손가락보다 짧은 여인상 등이, 두 번째 챕터 ‘뜻하다! 삼국시대’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이 보유하지 않은 고구려 유물에 남은 우리의 옛 상징 새, ‘세 발 태양 까마귀’ 등이 ‘미지의 과거’를 상상하게 하는 문을 연다. 세 번째 챕터 ‘욕망하다! 고려시대’에서는 태조 왕건상과 희랑조사상, 거대 석불 등이, 네 번째 챕터 ‘생생하다! 조선시대’에서는 조선의 골격 한양도성과 훈민정음 등이 지나간 옛이야기들을 우리의 현재와 연결하게 한다.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은 문화·예술 전 분야를 망라하면서 인문학적으로 통합하여 사유하게 하는, 아울러 널리 알려진 예술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고 질문하게 하는 논리를 치밀하고도 쉽고 재미있게 펼쳐 보여준다. 수천 년 전부터 아름다움을 삶의 근본으로 삼았던 우리의 뿌리를 눈앞에 생생히 그려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나아갈 방향까지 내다보게 하는 책이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혼돈과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이 시점에서, ‘살아갈 힘이자 살아온 삶 무늬’에 다름 아닌 아름다움의 길을 되걸어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자.
우리 민족에게는 3백 년마다 도약하는 문화의 리듬이 있다. 5세기에는 고대국가의 고유성이 무르익어 삼족오와 칠지도, 신라금관 같은 신물로 고대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8세기에는 통일신라의 기반이 잘 잡혀 성덕대왕신종과 불국사, 석굴암 같은 고전적 걸작들이 잇달아 나왔다. 11~12세기에는 대장경과 청자, 나전칠기로 기예의 세계 최고를 경험했다. 근세적인 민족 정체가 지금 현대까지 면면히 흐르는 틀을 완비한 15세기에는 우리 고유의 문자체계인 훈민정음, 신토불이의 『농사직설』과 『향약집성방』이 나왔다. 민족문화의 ‘벨 에포크Belle Epoque’라는 18세기에는 진경산수와 풍속화, 초상화 같은 전통회화의 혁신으로 미술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런 좋은 리듬을 그리며 21세기에도 세계문화에 기여하는 한민족의 문화도약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어떤 것일까? 배터리일까, 반도체일까? K-팝일까, K푸드일까, K-컨텐츠일까? 융합의 시대이니, 아마도 K라이프스타일이거나 K-컬처가 되지 않을까? (머리말에서)
다른 것을 같게 만들기보다 함께하게 만드는 것이 경영
문화는 다면을 속성으로 한다. 다양성은 문화의 생명이다. 문화는 하나를 놓고 경쟁하는 독존의 삶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많은 것들을 포용하는 공존의 가치로 삶을 동반한다. 고구려는 힘과 양의 문화, 신라는 태도와 질의 문화, 백제는 격의 문화를 지향하는 성향이 있다면서 삼국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 저자는, 경천사지 석탑과 고려 후기의 외래풍 문화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번 이 다양성 수용의 자세를 언급한다. “역사적인 ‘투쟁’은 정신을 강하게 하고 문화적인 ‘화쟁’은 정신을 유하게 한다. 음양과 강유는 세상을 경영하는 기본요소이다. 다른 것을 같게 만들기보다는 다른 것을 함께 하게 만드는 것이 경영 중의 경영이다. 획일성보다 다양성,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경영의 자원이다. […] 개체와 사회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섞였느냐, 안 섞였느냐?’의 구분보다 ‘투쟁이냐 화쟁이냐?’의 선택이 훨씬 중요하다. 순수와 불순의 구분으로 차이를 차별하는 ‘축출의 시대’를 끝내고, 화이부동으로 더불어 사는 다양성의 ‘축복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제대로 가치 매김 해야 할 옛 크리에이션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의 스토리텔링은 각 유물·유적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자세히 짚어냄으로써 익히 알려져 있던 작품들의 숨은 의의를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고려대장경이 ‘부처님의 신통력 빌어 국난 극복을 위해 만들었다’는 통념 때문에, 고려 크리에이터들이 지식정보 구축을 위해 기울였던 세계 수준의 체계성과 정확성, 예술성이 우리의 관심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고려대장경이 제작된 전후 사정을 꼼꼼히 설명하고 이 세계 최고의 대장경으로 지식강국, 출판강국의 바탕이 일찍이 이 땅에 마련되었음을 강조한다.
세종 이도의 훈민정음을 다룰 때에도 창제의 과학성과 혁명성, 예술성에 강조점을 두어 먼저 설명하고, 널리 회자되는 애민정신은 뒤에 언급한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가 온통 과학 그 자체라는 것, 뜻에서 소리로 글자의 중심이 넘어가는 것이 혁명적이라는 점, 모아쓰기 방식과 형태미가 탁월하다는 점 등이 이 책에서 부각된다. 또한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 이용이 당대 지식인 22명과 콜라보하여 만든 〈몽유도원〉의 일부임을 환기한다. “〈몽유도원〉을 시서화 문화철의 합작으로 다시 넓혀 볼 때 조선시대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가 제대로 보인다.” 요즘 주목받는 문화예술의 융복합, 콜래보의 생생한 역사와 전통을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 아울러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전국을 돌며 답사하여 만든 게 아니라, 서가에 앉아 선배 지도제작자들이 만든 지도와 지리정보를 비교·연구·편집해 더 나은 지도로 큐레이션한 것이라는 사실도 환기함으로써 당시 조선의 데이터베이스에 국토지리 정보가 충분히 쌓여 있었음을, 그만큼 대동여지도가 과학성과 효율성을 담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깨진 관계를 되돌리는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 옛 아름다움은 우주의 신비를 참되고 선하며 아름답게 드러내고자 했다. ‘진’은 생명의 원리에 충실하게, ‘선’은 생명의 순리에 성실하게, ‘미’는 생명의 문리에 견실하게 참여했다. ‘진선미’의 정립이 우리 삶의 원초적인 욕구였다. 그런 진선미의 관계가 절단났다. ‘분할통치’의 근대에 와서다. 사람과 물건, 시ㆍ공간 모두 조각내는 근대. 진은 헛똑똑이의 겉가량에 빠지고, 미는 성형하는 겉멋이 대종이고, 선은 착한 척하는 겉시늉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 따갑다. 되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만들까? 얼마나 살까?’ 하는 사물의 질문을 ‘어떻게 살까?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사람의 발문으로 되돌려야 한다.”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읽는 것은 우리의 먼 뿌리부터 새겨진 아름다움을 되걸어볼 기회인 동시에,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의 이정표를 제대로 되짚어볼 기회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사는 삶, 진정으로 잘 사는 삶은 그 되걸어보고 되짚어보기가 전제되어야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