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소설가 류승규 씨는 〈빈농〉〈농기〉〈예순이〉〈눈보라〉〈판쇠〉 등의 많은 작품을 통하여 한국 농민 생활의 가장 친근한 증언자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류승규씨의 작품은 거의 예외 없이 농민 소설이며, 그것도 일제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농촌 상황을 아무런 가감이 없이 묘사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20여 년간이나 농촌에서 직접 농사를 생업으로 지낸 류승규 씨에게는 이 경험이 문학 이전에 민족적 수난의 연속이었으며, 가난과 억압의 실감이었다. 이래서 씨의 소설은 다른 농촌 소설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농민의 가난=민족의 비극=사회적 정치적 책임이라는 절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류승규 씨는 농촌을 가장 비서정적인 경제 집단으로 파악하여 작품화하고 있으며 이 점은 앞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임헌영(문학평론가)
농촌 사람들이 너무 못 살고 굶주리는 게 안타까워 문학을 해야겠다고 작정했었다. 이무영 선생에게 농민문학을 배웠지만 그런 면에서 정신적인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스승과 제자이면서도 문학은 판이하였다. 류승규 선생의 소설은 체험을 바탕으로 농촌의 실상을 파헤치고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이었다. 체험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최서해(崔曙海)의 「그믐밤」「탈출」류의 경향에 가까웠다. 또한 그의 소설 전반에는 농민과 농촌에 대한 애정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러기에 지주와 일제의 수탈에 대해 극심한 적대감을 보이고 있고 근대화에 의해 농촌이 피폐해져 가는 것에도 비판을 하고 있다. 역사의식도 어느 농촌 소설가보다 다른 데가 있었다. 일제뿐만 아니라 6·25를 일으킨 소련과 이 땅에 군대를 보낸 중국과 미국에 대해서도 모두 조선 땅에서 나가라고 외치는 등 세계사적 안목에서 이 땅의 농민들의 수난과 비극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편집 「농지」가 이러한 비판성 때문에 1987년 출판 과정에서 곤란을 겪기도 했고 「덫」에 나오는 반미 의식이(이미 〈월간 문학〉에 발표된 것이긴 하지만) 단행본으로 엮어 내는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류선생의 중편 「농지」는 그의 이러한 문학적 특성이 잘 나타난다. 농토에 대한 봉수 영감의 끈질긴 애착, 근대화로 인해 피폐한 농촌, 젊은이들의 이농, 6.25로 인한 돌쇠 형제의 죽음, 일제의 억압과 수탈 등 근대사의 얼룩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류선생의 농촌 실정의 사실적인 표출에 의해 실감을 더한다. 농촌의 농사짓는 방법이나 농기구, 산과 들의 풀과 나무, 충청도 내륙지방의 토속적인 방언, 농부들의 내면 심리 등이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 이동희(소설가, 단국대 명예교수)
도시에서 살아 온 작가와 농촌에서 낳기만 하고 커서는 도시 생활만 했던 작가는 이러한 표현 묘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소설 작품이 허구에의 진실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작가, 그 자신의 진실한 체험에 따라서 독자의 감동 차원이 달라진다.
소설을 흔히 말하기를 「어떤 사건의 줄거리를 이야기로 풀어놓은 것」이라고 하지만 무조건 사건 구상에 의하여 그 줄거리만 풀어놓는다면, 이 소설이 일시적으로 흥미는 있을지 몰라도 예술 작품으로서 문학작품으로서의 영원성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 속에 직접 뛰어든 작가와 간접(사건 구상으로써)적으로 뛰어든 작가와는 그 기본적인 사상, 정신부터 다르다.
류승규는 어떤 작품에서도 간접이 아닌 직접 체험으로 작품 구성을 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깊은 곳에서 실감과 감동을 받게 된다.
- 김해성(문학평론가)
작가는 시종일관 농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농촌의 문제와 성실한 농민의 상을 소설에 사실적으로 형상화하였다.
그는 끊임없이 농민을 긍정하고 변호하고 구원하려 했으며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사실적으로 고발했다. 25년 농사의 일로 농촌에 대한 투철한 문제 의식을 갖고 농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허구적 조작 없이 솔직하고 진실되게 형상화한 류승규 특유의 농민소설은 한국문학의 공간을 보다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일생을 농민을 위한 소설로 독자들이 외면해도 꿋꿋하게 외길을 걸으며, 성직자가 교리에 몰두하듯 작가는 전답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농작물, 토실토실 여무는 낟알을 떠나 보람을 느낄 수 없는 구도자의 자세로 농민으로 살며 창작 활동을 하는 태도는 한국소설에서 또 다른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田本秀(전 근명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