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것들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한 소년이 삶을 끝내기로 작정하고 숲 안으로 들어간다. 소년이 원하는 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유명 청소년 심리상담사인 엄마를 진부하고 무책임한 ‘알고 보니’의 세계로 끌어내리려 하는 것. 까치발을 해야 닿을 만한 위치의 큰 나뭇가지 앞에 소년은 서 있다. 머리 좋고 신체 건강한 아이가 왜, 무슨 이유로 외진 숲속에서 자살하려 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단지 잘난 척해온 대로 나를 다 안다고 떠들었던 대로 이해해보라지, 라며 소년은 고리 안으로 머리를 밀어넣는다.
외진 숲속. 통나무 집 안에서 소년이 눈을 뜬다. 한 소녀가 옆에 앉아 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뒤에 처음 보는 풍경. 둥근 사각형 머리, 턱 선에 맞춰 일자로 자른 새까만 머리카락, 동글지만 딱딱해 보이는 어깨. 소녀 알마. 알마는 소년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설명한다. 이 숲, 이 집과 같이 살고 있는 삼촌과 이층에 기거하고 있는 올빼미에 대해. 여기는 어디고 무엇이며 왜 이런 숲에서 눈을 떠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늪도 아니고 틈도 아닌 그들은 그걸 ‘문’이라고 부른다. 소년은 자살을 시도했고 눈을 감았고 그 문을 통해 이 숲으로 들어왔다. 당분간은 돌아갈 수 없다. 소년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면 그 ‘문’이 열려야 한다. 그 문이 열릴 때까지 여기, 알마의 숲에 머무를 수밖에. 그 문이 언제 열리고 닫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소년은 따지지 않는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고리 안으로 머리를 밀어넣었던 게 아니었나. 엄마가 불안과 고통에, 죄책감에 추격당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고 좋았다, 소년은.
그냥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얘기해보고 싶었다. 내가 왜 난데없이 추잡스러운 상욕을 해대는 모욕증에 걸렸는지에 대해, 또 비행청소년들이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사지로 몰아넣는 자리에 왜 있었는지에 대해. 번듯한 중산층의 엄마와 아빠가 나를 얼마나 창피해하며 나를 버린 듯 버리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그것들에 대해 소년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질문을 하면 제대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너를 위해서야. 너를 다 알아서 그래. 아이의 영역 안에서의 대답들. 소년은 아이의 영역에서 벗어나 어른의 영역에서 설명받기를 원했고 이해받기를 원했다. 사랑받기를 원했을 수도.
어설프고 서툰 삶의 조각들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생의 신비로운 비밀
-무엇을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하지 않는 선택 같은 게 있겠냐. 네가 뭘 선택하든 후회는 반드시 따라붙어. 발 빠른 놈이거든. 차라리 그놈이랑 정면으로 맞닥뜨려. 실컷 후회하고 속시원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거다.
알마의 삼촌이 대답한다.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순간들을 실컷 겪어봐야 한다는 것. 그래봐야 제대로 증오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또 이해의 실마리라도 잡아볼 수 있다는 것. 소년에게는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소년은 서툰 것일 뿐이다. 원래 어린아이들은 성급하고 서투니까. 그렇다고 어설프고 서툰 것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어설프고 서툶 삶의 조각들은 시간이 흐르고 제대로 겪어보면 언젠가는 비어 있는 그곳이 채워진다는 것. 숲에 기거하는 알마, 삼촌, 올빼미가 소년의 존재증명을 위해 삶의 신비로운 이유들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