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 전역에서 연쇄살인사건 발생.
피살자는 모두 남자이고 성범죄 전과자로 밝혀져.
경찰,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증오 살인으로 판단하고 수사 중.
만약 오늘 위와 같은 기사가 보도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의 죽음을 애도할까, 아니면 죽어도 싸다는 식의 조롱을 하며 즐거워할까? 최근 부산 돌려차기 강간및살인미수사건 피의자의 신상을 임의로 공개한 유튜버에게 사람들의 찬사와 격려가 쏟아진 걸 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범죄자의 인권 따위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의 인권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다. 그런데 피해자의 인권을 말살한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식자와 현자는, 만약 자신과 자기 가족이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더라도 같은 주장을 펼 수 있을까? 과연 자기 가족이 살해당하고, 성폭행당하고, 괴롭힘당해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사회에서 범죄자에 대한 피해자의 사적 제재(복수, 보복 등)는 똑같은 범죄 행위로 취급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절명의 위기에 몰린 피해자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것조차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쌍방폭행으로 처벌받아 사회적 논란이 되곤 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내가 아무개한테 범죄 피해를 당했다.’라고 공연히 밝히면 범죄자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처벌받는다. 사법 시스템이 범죄자의 인권을 과도하게 보호하기 때문에 경찰은 칼을 휘두르는 범죄자를 권총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선생님, 칼 내려놓으세요.”라고 사정한다.
장편소설 ‘피해자’는 피해자의 인권과 범죄자의 인권, 그리고 사적 제재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내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라고 주인공이 독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성범죄자 연쇄살인사건이라는, 한국소설에서 다루어진 적 없는 소재를 이야기 재료로 삼았다. 주인공은 성범죄 피해로 인해 하나뿐인 딸아이와 아내를 잃는다. 이후 한동안 실의에 빠져 칩거한다. 극단적 선택도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복수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성범죄자를 잇따라 살해한다.
작가는 “피해자가 자신이 받은 고통만큼 범죄자에게 대갚음하는 행위를 범죄로 볼 수 있는가?”라고 소설을 매개로 독자에게 묻는 듯하다. 힐링, 유머, 희망 등 인생의 밝은 면을 이야기한 소설이 대세인 시대에 고통, 분노, 절망 등 인생의 어두운 면을 들춰낸 사회파 범죄소설이다. 이렇듯 주제가 무겁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든 소설은 소설일 뿐, 문장이 잘 읽히지 않고 재미가 없다면 독자는 외면한다. 소설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책을 다독한 작가는 이러한 독자의 니즈를 잘 알고 있다.
장편소설 ‘피해자’는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은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쓰였다. 문장을 읽은 후 무슨 뜻인지 생각하느라 페이지를 붙잡고 지체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복잡하지 않은 플롯으로 짜였다. 지금 일어나는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해석하기 위해 앞 장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술술 읽어 나갈 수 있는 소설이다. 숨 막히는 듯한 서스펜스와 스릴, 충격적 반전 등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면은 없으나 각 장마다 사건, 인물 간의 갈등, 인물 내면의 갈등 등 크고 작은 극적 요소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내용이 궁금해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된다. 문장과 문단, 장의 길이 조절을 통해 이야기 전개 속도의 완급을 다루는 작가의 스토리텔링 솜씨도 엿보인다. 그 외에도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외양, 행동, 심리 등에 관한 세심한 묘사가 문학적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