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과 중국말과 영국말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먼저 제1부 ‘말과 말차림법’에서는 말이 가진 힘, 말의 탄생과 발전사, 한국말과 중국말과 영국말의 특징과 다른 점, 그리고 한국말 학교문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본다. 학교문법의 문제는 크게 문법 용어와 한국말 나름의 특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문법 용어는 한국말을 풀어내는 용어와 영국말을 풀어내는 용어가 서로 헷갈리게 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한국말에서 형용사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서술어로 구실하며 문장에서 성분을 나타내는 반면, 영국말에서 ‘adjective’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수식어로 구실하며 문장에서 품사를 가리키는 말이어서 성격이 크게 다르다. 마찬가지로 동사와 ‘verb’, 주어와 ‘subject’, 목적어와 ‘object’도 각각 한국말과 영국말에서 가리키는 바와 쓰임이 다른데도, 마치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처럼 가르치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문법이 한국말 나름의 특성을 올바르게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짚어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영국말에서 낱낱의 품사인 ‘I’, ‘go’, ‘to’, ‘the’, ‘school’로 문장을 이루듯이, 한국말도 낱낱의 품사인 ‘나’, ‘는’, ‘학교’, ‘에’, ‘가’, ‘ㄴ’, ‘다’로 문장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말은 어절을 바탕으로 문장을 차린다. 이를테면 세 개의 어절, 즉 〈나는〉과 〈학교에〉과 〈간다〉를 가지고 “나는 학교에 간다.”라는 문장을 구성하며, 각각의 어절은 기틀을 나타내는 말(나/학교/가)과 구실을 나타내는 말(는/에/ㄴ다)이 어우러져 있어서, 무엇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가 또렷이 드러난다는 것이 한국말의 특징이다.
한국사람이 갈고닦은 집단지성의 결정체,
한국말의 힘을 또렷이 드러낸 완전히 새로운 문법을 만나다!
제2부 ‘한국말 말차림법’에서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한국말 문법이 조목조목 펼쳐진다. ‘문법(grammar)’이 어떤 말의 꼴과 뜻을 배우기 위해 규칙을 정리한 법칙이라면, ‘말차림법(language system)’은 사람들이 어떤 말의 꼴과 뜻을 배우고 쓰면서 머릿속에 스스로 차려가는 방법이다. 저자는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열두 살짜리 어린이의 머릿속에 차려진 한국말을 그대로 좇아가는 방식으로 한국말 말차림법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문법 용어는 크게 아홉 가지이다. 먼저, ‘말’이란 무리를 이루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긴 것’을 함께 뜻으로 사무치는 것으로, 언(言), 어(語), 언어(言語), 문(文), 사(詞), 사(辭) 따위를 모두 아울러서 ‘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문장은 ‘포기말’, 어절은 ‘마디말’, 구절은 ‘매듭말’, 단락은 ‘다발말’, 형태소/품사는 ‘씨말’, 어근/어간은 ‘앛씨말, 토씨/조사/어미는 ‘겿씨말’로 바꿔 부르며, ‘낱말’은 국어사전의 표제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말을 주고받을 때 말소리를 끊어서 말하는 낱낱의 것을 가리킨다.
한국말 말차림법의 핵심은 한국말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 즉 1) 마디말 차림새, 2) 매듭말 차림새, 3) 포기말 차림새, 4) 씨말 차림새를 풀어내는 데 있다. 저자는 특히 ‘마디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말에서 마디말(어절)은 포기말(문장)을 이루는 기본 단위로, 말의 기틀을 나타내는 앛씨말(어근/어간)과 말의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토씨/조사/어미)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나는 밥을 먹었다.”라는 포기말은 세 개의 마디말, 〈나는〉-〈밥을〉-〈먹었다〉로 되어 있고, 각각의 마디말은 ‘나/밥/먹’이라는 앛씨말과 ‘는/을/었/다’라는 겿씨말로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마디말과 마디말을 엮어서 매듭말과 포기말을 만들고, 낱낱의 마디말을 쪼개서 앛씨말과 겿씨말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에,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일은 곧 마디말을 배우고 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씨말’이다. 씨말은 학교문법에서 ‘형태소’ 또는 ‘품사’라고 일컫는 것으로, 이 책에서는 한국사람이 어떤 씨말을 새로 만들어 쓸 때 바탕에 차려놓은 까닭과 방법을 ‘씨말의 바탕치(morphological foundation)’라고 부른다. 한국말에서 볼 수 있는 씨말의 바탕치는 매우 독특하면서 중요하다. 이를테면 ‘파래’와 ‘파랗지’의 바탕치를 풀어내면 사람들이 ‘파래’를 왜 ‘파래’라고 말하고, ‘파랗지’를 왜 ‘파랗지’라고 말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과 방법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말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사람이 갈고닦아온 집단지성의 결정체이다. 한국사람이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모든 것은 한국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갖가지 실마리가 들어 있는 한국말은 한국사람이 대를 이어가며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 가운데 단연 최고로 값진 것이다. 이처럼 귀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고 쓰려면, 이제라도 한국말의 바탕과 차림새를 제대로 묻고 따지고 풀어서 새로운 말차림법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말 말차림법』이 그 길을 바르게 잡아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