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로 살 것인가? 부유한 위조 인간으로 살 것인가?
100년 전 이야기가 현재 우리의 삶에 던지는 질문
주인공 하원근은 수상한 제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기 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자리만 준다면 오케-이!를 외치며 일을 수락해 버린다. 일자리를 제안한 변호사 최문섭은 원근에게 “나의 뜻을 대신하신 기관”인 동시에 “당신의 몸이 되지 말고 나의 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최문섭은 원근에게 노동의 윤리를 설파하며, 이후 계약에 따라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을 종용한다. 원근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지만, 이미 문섭이 “하시는 명령이라면 어기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라 일을 무를 수도 없게 된다.
1936년 발간된 『인간의 눈물』은 대공황 시대의 ‘인간성’을 묻는 작품이다. 자신을 타자로 바꿔치기함으로써 생존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함으로써 굶주림에 처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위기가 정리 해고와 구조 조정, 대량 실업과 복지 축소 등을 통한 ‘인간성’의 위협으로 나타나는 지금, 『인간의 눈물』이 제기한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추천사 中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그러니까 가족이나 친구들도 전부 저버리고 물질적으로 안락한 삶을 택할까? 아니면 굶주릴지언정 나 자신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삶을 택할까? 그 어떤 것을 택하든지 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 또한 갈등한다.
하원근이 처한 문제는 비단 그에게만 해당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통해 생존하는 이들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하원근이 최문섭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듯이, 많은 노동자가 노동 계약에 의해 고용주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하원근은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하게 될지, 또 그를 옭아매는 계약과 노동 윤리의 실체는 무엇일지 딱지 시리즈 5편 『인간의 눈물』을 통해서 확인해 보자.
ㆍ 넘쳐나는 상상력 속 끝없이 이어지는 세속의 이야기, 두두 딱지 시리즈
두두 딱지 시리즈는 ‘너저분하고 잡스러운 세속의 이야기’를 모토로 딱지본 소설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선보인다.
딱지본 소설은 20세기 초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았으나 이후 근대 소설에 미달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학장에서 잊힌 작품군이다. 딱지 시리즈는 근대 소설의 규범과 기준에 얽매여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와 그 속에 담겨 있는 정제되지 않은 욕망들에 주목했다. 이 ‘미달’의 이야기들 속에 ‘넘쳐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 그리고 상상력은 100년 전 독자들이 그러했듯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들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그러나 불완전하고 모자란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편의 완전하고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 시리즈로 구성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딱지 시리즈는 ‘이야기의 한계는 이야기로 채운다’는 마음으로 작품 리스트를 쌓아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