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3대에 걸친 ‘살리는 자’의 숙명, 그리고 ‘인간의 몫’에 관하여
최초에 씨앗에서 움튼 어린 두 나무가 있었다. 부족함을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 천재지변을 견디고 장엄한 숲이 된. 그러나 두 발로 걷는 희귀한 종족 인간이 나타나고 나무들은 차례로 쓰러진다. 사람에게 파괴된 적이 있는 나무, 그 나무는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을 파괴한 적이 있다. 장미수와 신복일은 결속하여 일화, 월화, 금화, 쌍둥이 남매 목화와 목수를 낳는다. 어느 날 꼬마 금화와 쌍둥이는 홀린 듯 그 숲속으로 향한다. 산을 오르던 금화의 머리 위로 나무가 우지끈 기운다. 목화는 어른을 부르러 산 아래로 뛰어가고 다시 돌아왔을 때 금화는 온데간데없다. 금화의 실종 후 가족들은 죄책감으로 고통 속에 살아간다.
목화가 열여섯이 되던 봄, 꿈인 듯 눈앞으로 투신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 죽음을 목도하다가 목소리를 듣는다. 가서 그를 구하라는 말. 망설이다가 목화는 달려간다. 열기와 함께 사뿐 내려앉는다. 그는 조금의 부상만 입은 채 살아난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재차 그 세계로 ‘소환’되고 나서야 이 일이 꿈이 아님을 안다. 깨어나 우는 목화를 보고 엄마인 장미수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긴다. 차라리 금화이길 바랐는데. 장미수는 열다섯부터 사람을 구했던 것. 장미수에게는 구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죽음에 비해 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겨우’에 불과했다. 패배감과 무력감에 신을 저주한 장미수와 달리, 할머니 임천자는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둔다. 목화는 첫 소환에서부터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의 존재를 느낀다. 의심과 반항과 시험도 있었지만“무성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인 ‘중개인’의 정체성을 체화해간다. 소환하는 그 나무를 잘 알고 싶어 목공소에서 일한다. 그러던 중 일화의 딸인 루나의 자살을 막게 되고 중개 때 목화를 봤다는 루나의 말에 놀라 그가 이제껏 살린 ‘단 한 사람들’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살아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평범한 그들의 일상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삶과 죽음에 판단을 멈춘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을 한다. 임천자의 평온한 죽음 이후, 목화는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의 의미를 스스로 구한 것이다. 한 번뿐인 삶, 다시없을 오늘을 사는 한 존재, 그것은 신도 나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오직 인간의 몫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_본문에서
“언젠가 사라져버릴 당신과 나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가가 세계를 호명하는 아름다운 방식
엄청난 수령의 나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악행을, 나약함을, 순수함을, 서로를 돕고 아끼는 모습을, 사랑하고 기도하다 어느 날 문득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삶을”(‘작가의 말’에서) 다 보았을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무의 눈에서 보자면 인간은 순간을 사는 존재일 뿐이라고. 압도적인 자연의 스케일 가운데서 인간이란 미약하지만 그 ‘단 한 명’들의 낱낱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또한 이야기하고 싶었던 듯하다. 목화가 중개에서 깨어난 뒤 장소를 유추해 죽은 자들의 마지막 자리를 찾아가보는 장면이 그것이다. 어떤 이는 새벽 가로등 빛이 닿는 건물 입구 계단 벽에 기대어 홀로 죽었다. 어떤 이는 늦은 밤 갓길에 세운 자동차 안에서 쪽잠을 자다가 세상을 떠났다. 어떤 이는 이른 새벽 눈을 떠 옆에 누운 반백 년 넘게 함께한 얼굴을 한번 보고 편안한 잠 속에서 심장이 멈췄다. 사고 현장 혹은 폭력 속에서 사라진 원통한 죽음과 충분히 생을 누려 되살리지 않아도 좋을 죽음 등등 그 모든 마지막을 목화가 끝까지 보았다. 죽은 자가 한 대로 건물 계단에 잠시 기대었다가 떠날 때 생수 한 통을 남겨두고 오는 목화의 발걸음에서 가까스로 살아가는 인간을 향한 작가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작가가 부려놓은 이 세계를 통해 독자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그릇에 담긴 나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단 한 사람으로서.
목화는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했으며 그와 같은 죽음을 원했다. 그러므로 남김없이 슬퍼할 것이다. 마음껏 그리워할 것이다. 사소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목화가 원하는 삶.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 또한 나눌 수 없었다.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