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산에 숲을 만들어 보자!”
이름에 난초(蘭草)와 지초(芝草)를 품고 있는 ‘난지도’는 아이러니하게도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시의 쓰레기를 매립한 곳이다. 이후 난지도는 산책도 하고 한강도 조망할 수 있는 네 개의 공원으로 이루어진 월드컵공원으로 변신했다. 멋진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15년 만에 100여 미터 높이의 거대한 ‘산’을 이룬 쓰레기더미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라지지 않았다. 쓰레기를 그대로 둔 채 매립지 안정화 공사와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매립 가스와 오염수 처리 시설을 갖추고, 쓰레기 속으로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고밀도폴리에틸렌 필름을 깐 후, 그 위에 흙을 덮었을 뿐이다.
네 개 공원 중 노을공원은 처음에 골프장이었다. 하지만 골프장보다 시민을 위한 녹색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44개 시민단체가 손을 잡고 2000년부터 골프장을 공원으로 바꾸어 달라는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2008년 노을공원도 공원이 되었고, 노을공원만이라도 생태적인 공간으로 지켜 가기 위해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비영리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2011년 8월, 쓰레기산에 나무를 심는 노을공원시민모임이 시작되었다.
이 책은 쓰레기산 난지도에서 어떻게 숲을 꿈꾸게 되었는지, 풀 한 포기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척박한 땅에 숲을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배움은 무엇인지, 노을공원시민모임이 걸어 온 10여 년간의 발자취를 좇으며 ‘숲’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책이다. 이들에게 숲은 “모두가 존중받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곳, 존재 간 힘의 조화가 이루어진 건강한 생명 공동체”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썩지 않는 쓰레기를 껴안고 있는 땅이 단순히 나무만 많은 곳이 아니라 동물, 식물, 미생물, 무생물, 그리고 인간까지 존재하는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우리가 사는 곳이 건강한 ‘숲’이 되는 순간을 꿈꾸게 된다.
“우리가 숲을 만들 수 있을까?”
노을공원시민모임은 쓰레기 매립지 사면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는 나무 심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슨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삽도 잘 들어가지 않는 험한 땅인데다가 물 대기도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쓸 수 있는 돈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나무 심기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런 땅에서 나무가 살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공원 사면은 매우 다양한 종의 나무와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제법 숲다운 모습이 되었다. 2011년부터 많은 기업과 자원봉사자가 지속적으로 참여해 162개의 크고 작은 숲이 생겨났고, 숲과 숲이 연결되어 46개 권역으로 묶였다.
이 책에는 10년 넘게 노을공원시민모임이 현장에서 실행해 보고 정착시킨 척박한 땅에 나무 심는 방법이 소개된다. 이들이 숲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땅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도토리 같은 씨앗을 심는 노천 파종, 흙과 씨앗을 넣은 천연 소재 식생 마대를 나무를 심고 싶은 곳에 깔아 주는 시드뱅크, 주로 직접 키운 나무와 어린나무를 이용하는 묘목 심기, 그리고 집에서 씨앗부터 숲이 될 나무를 키워 노을공원으로 보내는 비대면 숲 만들기 방식인 ‘집씨통’이다. 모두 나무를 심으며 그때그때 필요와 상황에 따라 고안하고 실행에 옮긴 방법이다. 물을 편하게 대기 어려운 곳이라 빗물을 모으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을 위해 ‘동물물그릇’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도 자세히 소개한다. 책을 읽다 보면 숲을 만드는 일이 단순히 나무 몇 그루를 심은 일이 아니며, 인간이 시작했지만 결국 숲을 만드는 건 ‘조화와 균형’을 향해 가려는 자연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할 수 있을까요?”
노을공원시민모임은 나무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어린나무를 구해 심기도 하고 꺾꽂이 같은 번식법도 사용하지만, 주로 ‘씨앗부터 키워서’ 나무를 심는다. 숲의 ‘다양성’을 위해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우리 나무의 씨앗을 구해 직접 키워서 심어 보겠다는 의미도 있고, 상대적으로 비싼 묘목 구입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을공원시민모임은 2022년 여름 기준 100여 종의 토종 나무를 나무자람터에서 키우고 있고, 절반 정도는 씨앗부터 키운 나무다. 씨앗부터 나무를 키우려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그렇게 자란 나무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 씨앗이나 어린나무는 큰 나무에 비해 육묘나 운반 등에 필요한 에너지의 양도 상대적으로 적어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다. ‘씨앗부터 키워서’라는 말에는 “필요한 과정을 거르거나 소홀히 하지 말고 차근차근 정성을 다해 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숲을 만드는 일은 서두른다고 해서 빨리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노을공원시민모임 총회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1002(遷移)숲 만들기’라는 활동명이 소개되었다. 도심 속에 고립된 쓰레기산 노을공원의 아까시나무숲은 모두 입을 모아 자연스러운 천이가 힘들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 아까시나무숲에 사람이 심지 않은 나무도 자라고 있었고, 동물들이 옮긴 씨앗에서 자란 나무들도 많았다. 노을공원시민모임은 이곳도 ‘천이가 가능한 숲’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 옮기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도 활동가와 자원봉사자 들은 배낭에 도토리를 채워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사면 구석구석을 오르내리며 ‘인간 다람쥐’가 되어 도토리 등 나무의 씨앗을 심었고, 숲이 될 나무를 품고 있는 씨앗을 심고 나무로 키우는 활동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책에는 지금까지 조성된 46개 권역의 숲이 어떤 이들의 참여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쓰레기가 드러나 있고 매립가스가 여전히 나오는 쓰레기산 사면에서 어떤 방법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는지, 그 방법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어, 척박한 환경에 나무를 심는 방법과 도시숲 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와 영감을 제공한다. 6장에는 동국대학교 바이오환경과학과 오충현 교수가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식물의 힘, 생태계와 물질 순환과 천이, 위해식물 등 숲 만들기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이해해야 할 기본 개념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노을공원시민모임의 숲 만들기 활동의 의미를 생태학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해 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씨앗부터 키워서 1002(遷移)숲 만들기’ 참여 방법도 책 뒤에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