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극복하고 희망을 꿈꾸는
통일운동의 미래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제3부 반-통일운동 세력과의 투쟁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는 1, 2, 3부(각 1권)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부 ‘반-통일운동 세력과의 투쟁’(1998년~2022년)은 ⑪ 민화련·민화협의 출범과 범민련과의 갈등, 마지막 범민족대회,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인혁당 무죄투쟁, 박근혜 정권의 이자고문 ⑫ 전창일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현실과 미래, 천안함 사건과 5.24 조치, 이적단체로 몰린 통일운동단체, 통일대박론과 촛불 정국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탄핵당한 박근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통일운동의 불씨로 남은 청년들과 전창일의 고언 등이 서술되어 있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두 정상은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6·15 남북공동선언〉을 평양에서 발표했다. 북쪽의 인민들은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에서 통일의 역군으로 변모한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을 조명했고, 김정일 위원장 역시 우리 민족의 일원이라고 남쪽의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남쪽의 흡수통일론과 북쪽의 적화통일론으로, 분단 이후 늘 대립되던 남북문제에 대한 인식이 일거에 무너진 것으로 보였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 때의 〈10.4 남북공동선언(2007)〉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과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2018년 6월 12일 현지 시간 오전 9시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역사상 최초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두 정상의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19년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두 번째 정상회담이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합의문 채택에 실패하면서 남북관계는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영국 언론 「더 가디언」은 “이 상황에서 가장 큰 패배자는 문재인”이라며 “문재인은 이제 더는 북한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 없을 것이며, 현재로선 남북 경제 협력도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신문의 지적은 정확했다. 각종 선거의 결과가 「더 가디언」의 신뢰성을 담보해주고 있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치러진 17개 지역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15개 지역을 석권한 압승을 거두었다. 2020년 4월 15일에 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역시 민주당의 독무대였다. 친 민주당 계열인 열린민주당을 합하면 전체 의석(300석) 중 60%가 넘는 183석이 여당 몫이었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등 선출직 공직자 대부분이 민주당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화려한 승리는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2021년 4월 7일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 힘은 서울과 부산을 압도적 표 차이로 탈환했고, 지방의 자치단체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민주당 참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 공직자들의 성추문과 비리, 부동산 정책 실패,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등을 여당 참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외신들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빈부격차 확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등으로 여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면서 야당 후보들은 기존 지지층뿐만 아니라 무당층의 지지를 받고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년 전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를 설명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빈부격차 확대, 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 코로나19 사태 등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무렵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비록 근소한 차이(윤석열 48.56%, 이재명 47.83%)였지만 정권은 국민의 힘으로 넘어갔다. 2022년 3월 9일의 대통령 선거결과는 민주당을 혼돈상태로 몰고 갔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 취임 후 첫 선거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는 더욱 처참했다. 2022년 6월 1일 치러진 이 선거에서 민주당의 의석수는 광역단체장(14석→5석), 기초단체장(151→63), 광역의원(652→322), 기초의원(1639→255) 그리고 국민의 힘의 경우 광역단체장(2→12), 기초단체장(53→92), 광역의원(137→540), 기초의원(1009→1435) 등의 결과로 집계되어 민주당은 참패를 모면하지 못했다. 이제 민주당은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민주당 몰락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민주당 지지층 중에는 소위 비판적 지지 세력이 있다. 비판적 지지론은 자신이 지지하는 당의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최악"이라 여겨지는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 여겨지는 후보를 일단 지지한 뒤, 차후 비판을 통해 개선해 나간다는 논리를 일컫는다. 이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없을 경우도 포함된다. 정통사회주의자, 복지사회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자(사민주의), 대의제를 불신하는 직접민주주의자, 비정규직노동자, FTA체제의 농민들, 환경 문제를 포함한 생태주의자, 페미니스트·성소수자·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그룹… 등 그 폭은 의외로 넓다. 주목할 것은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의 갈등이다.
지은이의 발문 중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윤기복(1926~2003, 범민련 북쪽본부 의장), 백인준(1920~1999, 범민련 북쪽본부 의장), 여연구(1927~1996, 범민련 북쪽본부 부의장) 등은 북쪽 정부에서 장관급으로 활동했으며, 사후에도 북쪽 인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반면 문익환(1918~1994,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 강희남(1920~2009,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전창일(1928~ ,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등 남측본부 주요 인사들은 모두 옥고를 치렀을 뿐 아니라 출옥 후, 사면복권이 되어도 ‘빨갱이’ ‘주사파’ 등으로 칭하며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외쳤다는 죄 아닌 죄로 목숨을 잃은 이, 고문을 당하고 출옥 후에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이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 다수는 김대중 이후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는 한 축이었다.
여대야소 시기였던 노무현 정권 그리고 180여 석을 가졌던 문재인 정권 때, 민주당은 적어도 국가보안법은 철폐했어야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절대 다수당이었던 문 정권은 5.24 조치 철폐, 국보법 철폐, 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의원 구속문제 등 통일 관련 현안에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취임 전 약속했던 인혁당 이자 문제조차 국정원장은 해결해 주지 않았다.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무색하게 만든 민주당의 행태였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랬기에 문정인 정권의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열광적으로 환호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다시 냉전 상태로 돌아가자 문재인 정권은 「더 가디언」의 지적처럼 북한과의 관계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했으며, 남북 경제 협력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미국 정부의 꼭두각시라는 비아냥거림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민중들은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비판적 지지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비판적 지지자들을 포용하는 노선으로 변신해야 하리라 본다.
영국 외무부에서 20년간 근무했지만, 역사 관련 저술가로 더 유명한 E. H. 카아는 “서구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지배계급이 착취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하며 “조국(영국)이 미국과 친해지기보단 냉전의 중립국이 되길 바랬다”고 한다. 한편, 카아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 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라는 경구를 남겼다. 분단 77년이 되도록 통일운동에 관한 역사서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나무라는 듯싶다.
전창일은 백수(99세)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정확한 기억과 놀라운 정열로 100회가 넘는 구술대담과 회고록을 통해 증언했으며, 그동안 간직했던 자료- 북녘가족과 주고받은 편지, 남북해외 동포들이 연대한 범민련 관련 자료, 투옥 중 받은 편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지들이 보낸 편지- 등을 공개했다.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1, 2, 3부 전권은 2,000페이지에 이른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400여 개의 주석, 300개가 넘는 그림(이미지), 32개의 표, 49개의 자세히 보기 등이 수록되어 자료집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는 전창일 선생의 삶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재해석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향후 통일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어떻게 친북하지 않고 반북 외치며 통일운동을 이루나”라는 전창일 선생의 절규가 우리 민족의 양심을 흔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