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는 교육사적 과제와 민족사적 과제를 일치시킨 사회운동!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민족에 대해서 정치적 예속, 경제적 착취, 문화적 전통과 생활양식의 파괴를 일삼았다. 이런 식민지정책들을 추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바로 교육으로, 식민지교육을 통해 피식민 민족의 의식까지 식민화하고자 했다. 일제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의 식민지교육 목적이 ‘황민화(皇民化)’라면 사학(私學)이나 서당과 같은 민족교육 기관의 목적은 ‘반(反)황민화’, 즉 민족독립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야만 설치될 수 있었던 제도교육 기관들이 명시적으로 민족독립을 표명할 수 없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학도 서당도 일제의 식민교육정책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 제도교육의 이 같은 한계성으로 말미암아 민족적 과제는 사회운동을 통해서 추구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의 강압적이고 차별적인 식민교육에 저항해 일어난 학생운동은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계몽운동의 발로였으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움직이었다. 학생운동과 더불어 노동운동·농민운동 등도 민족정신을 일깨움으로써 민족운동을 질적으로 발전시켰다. 범민족적 운동 세력인 신간회가 갖는 교육사적 의의도 이런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신간회는 다양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각종 야학의 설립에 관한 건, 조선 아동의 의무교육제 확립에 관한 건, 학생 맹휴에 관한 건, 도서관 설치 및 간이문고 설치에 관한 건, 순회 강좌 개최에 관한 건, 한글 강좌 개최에 관한 건, 무산아동 교육에 관한 건, 학생 사회과학 연구의 자유 및 학생자치제 실시에 관한 건, 대중교육에 관한 건, 모든 교육의 조선인 본위 및 조선어 사용에 관한 건, 관립·사립학교에 대한 경찰 간섭의 금지, 민간 학교기관에 대한 허가제의 폐지, 수업료에 관한 건 등을 추진함으로써 식민화교육에 저항했다. 이러한 신간회의 활동은 당시의 교육문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해결 방안을 위한 민족운동의 당위성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 신간회의 교육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육사 연구는 제도적 교육 기관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에만 치우쳐, 민족교육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각종 민족운동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하여 의도적이었든 비의도적이었든 간에 한국교육사 연구는 일본의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민족저항사 연구를 통해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체성을 찾는 측면에서 한국교육사 연구가 절실하다며, 이 책의 현재성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