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승미술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 미학의 역사를 쓰다
저자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양미술 일변도이던 기존 미학의 흐름을 탈피하여 전승미술을 우리 미학의 중심에 놓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인물로 유명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계 마당발’인 그는 우리 문화계의 다양한 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그들의 삶과 예술을 관찰하고 탐구했다. 특히 장욱진, 김종학, 김환기, 윤형근 등 한국 대표 미술가들과 교유하며 그들의 내밀한 작품세계를 탐구했다.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분청사기와 벼루 등 숨겨진 우리 미술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는 그러한 김형국 교수의 전승미술 사랑 50년 세월이 축적된 책이다. 직접 우리 미술판을 뛰어다니고 미술계 인사들을 만나고 미술관을 운영하며 경험한 ‘체험적 미학 현대사’이다. 50년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우리 미학의 역사인 만큼 미술계 인사들의 흥미로운 인사이드 스토리와 뼈를 깎는 창작의 전말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 미술이 재발견되고 재평가되는 과정도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세상의 주인이 사람이듯, 미술판 주인도 사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화가와 작가 등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학자와 언론인, 일본인 수집가와 인사동 고미술상 주인까지 우리 미술판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회화, 서각과 도예는 물론 건축과 행정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지난 50여 년간 문화계 곳곳에서 직접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대략 6,500점, 이리저리 살피는 데 하루씩만 잡아도 꼬박 20년치 민예품을 수집한 한국 브리태니커 사장 한창기, 술이 거나해지면 달항아리를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화가 김환기, 평생 ‘무소유’를 설파했지만 고미술상의 책상반 앞에서는 “중 아니면 싹 사간다!”며 소유욕을 감추지 못했던 법정스님 등, 화수분처럼 계속되는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향한 문화계 선각자들의 진심 어린 애착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의 애정 어린 행적이 우리 미술의 재발견과 발전에 기여한 면면까지 더불어 읽힌다.
우리 미술품의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
저자는 흔히 말하는 ‘예술작품’을 살피고 이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옛 생활을 이루던 작은 물품 하나하나에 주목한다. 즉, 백자와 분청사기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사용하던 민예품까지 폭넓게 살펴본다. 목기 같은 민예품의 아름다움에 착안했음이 특출했기에 동양화가 겸 미술사학자 근원 김용준(近園 金瑢俊)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선인들이 나무소반과 무쇠등가, 조각보 등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집요하게 탐구하는 과정을 다감한 통찰이 담긴 문장으로 살펴 나간다. 또한 꾸밈없다 못해 평범하다고 평가받던 달항아리가 청자나 백자에 버금가는 예술적 성취로, 조악한 모조품 취급받던 민화가 정통 수묵화에 견줄 만한 채색화로 높게 평가받게 된 우리 미학 내 변화의 흐름을 짚어낸다. 저자가 직접 추린 100여 장이 넘는 사진을 통해 읽는 이는 우리 미술품의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직접 느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