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 맛있는 음식
우리 입맛이 평준화되고 집집마다 음식 맛이 똑같아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입니다. 집집마다 간장, 된장을 담가 먹을 때는 가장 중요한 양념이 ‘손맛’이었다지요. 손맛을 잃으면서 혀도 함께 맛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맛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었습니다.
‘쓴맛’이라는 말 하나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다양한 맛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아주 조금 쓰면 쌉싸래하다, 그보다 더 쓰면 씁쓸하다고 하는가 하면 씁쓰레하고, 씁쓰름하고, 쌉싸름한 것이 ‘쓴맛’입니다.
‘단맛’으로 대동단결하는 세상이지만 조금 달 때는 달짝지근하다, 많이 달 때는 달큼하다, 입맛 당기게 달 때는 달콤하다, 그리고 아주 달콤하면 감미롭다, 말할 수 있게 돕고 싶었습니다.
‘짠맛’은 또 어떻고요. 소금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때는 슴슴하다, 아주 조금 짠맛이 느껴질 때는 심심하다, 입에 딱 맞게 맛있을 땐 감칠맛 난다,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소한 맛’도 은근한 고소함, 뭉근한 구수함, 짭짤한 구수함 다 다르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신맛’도 새그러운 맛 다르고, 새금새금한 맛 다르거든요.
‘매운맛’도 매콤한 게 좋은지, 맵싸한 게 좋은지, 알싸한 게 좋은지, 아니면 칼칼한 게 좋은지 구분해 말할 수 있으면 그 음식이 몇 배쯤 더 맛있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달라지는 제철 재료들로 맛있는 말 사전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보았습니다. 우리 혀가 잃어버린 맛도 찾고, 구분해 쓰기 힘든 맛에 관한 여러 가지 말도 함께 즐겨 주세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이 주는 밥상
먹을거리가 영글어 가는 가을에서부터 시작해 밥상을 차려 보았습니다.
제철 재료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제철 음식을 나란히 두고,
대표되는 맛을 연결했습니다.
쓴맛에는 도토리와 도토리묵 한 접시를,
단맛에는 벼와 식혜 한 그릇을,
삼삼한 맛에는 홍합과 홍합밥 한 그릇을,
고소한 맛에는 굴과 굴전 한 접시를,
봄의 맛으로는 쑥과 쑥버무리 한 접시를,
짠맛에는 죽순과 죽순장조림을,
신맛에는 오이와 오이냉국 한 그릇을,
매운맛에는 고추와 떡볶이 한 한 그릇을 연결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음식들, 좋아하기 힘든 맛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평소 우리들의 밥상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것들을 선보이면서 아이들이 새롭게 맛과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음식의 가짓수는 많아지고 국경을 넘나드는 음식들로 풍성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맛의 정수로부터는 멀어진 건 아닌가 싶은, 어찌 보면 참으로 가난해진 우리 밥상을 풍요롭게 채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