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그림씨리즈
“그림이 구축한 문명, 고전으로 만나다”
001 《사람 몸의 구조》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지음, 엄ㅣ창섭 해설
002 《자연의 예술적 형상》 에른스트 헤켈 지음, 엄양선 옮김, 이정모 해설
003 《북미의 새》 존 제임스 오듀본 지음, 김성호 해설
004 《십죽재전보》 호정언 지음, 김상환 옮김, 윤철규 해설
005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 아고스티노 라멜리 지음, 홍성욱 해설
006 《건축4서》 안드레아 팔라디오 지음, 정태남 해설
007 《금속에 관하여》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 지음, 홍성욱 해설
*신간* 008 《아이히슈테트의 정원》 바실리우스 베슬러 지음, 원정현 해설
인류 문명의 위대한 고전 속 그림을 소개하는 교양 예술서!
16세기는 종교개혁이 시작된 시기만은 아니다. 16세기 서양은 신대륙 발견과 프란시스 베이컨의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출발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서양의 과학 발전은 그 후 문명의 전 지구적 전환을 초래한다. 명실상부하게 서양의 과학이 근대의 기반을 닦고 전 지구적 문명을 견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오래 전부터 근대 서양 과학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들여다본 결과 알게 된 사실은, 근대 서양 과학의 발전은 근대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동판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과학자들의 사실적 연구를 추동(推動)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막 박물학이라는, 자연 전체를 뭉뚱그려 연구하던 학문이 가지를 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탄생하기 시작한 근대의 과학자들은 새로이 소개된 인쇄술과 동판화 기술을 활용하여 단순히 콘텐츠만을 담은 논문이 아니라, 자신의 과학적 탐구를 실제로 드러내기 위해 독창적이고 놀랄 만한 책들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성과물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이 자료들을 반드시 우리 독자들에게 소개하리라 다짐했다. 이름하여 클래식그림씨리즈! 시리즈의 포문을 연 《사람 몸의 구조》와 《자연의 예술적 형상》, 그리고 뒤이어 출간한 《북미의 새》, 《십죽재전보》,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 《건축4서》, 《금속에 관하여》에 이어 여덟 번째 책으로 바실리우스 베슬러가 제작한 위대한 식물지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을 출간한다.
인류 최초의 ‘예술적’ 식물지
《아이히슈테트의 정원》
대주교의 정원을 품은 식물지, 《아이히슈테트의 정원》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의 역사는 16세기 말, 요한 콘라트 폰 게밍겐이 새로 아이히슈테트의 대주교로 임명되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대주교로 임명되기 전부터 아이히슈테트의 빌리발트 성 주변에는 오래된 정원이 있었는데, 식물을 열렬히 사랑하는 식물학자이기도 했던 대주교는 여러 원산지의 식물들을 가져와 이 정원을 더 근사하게 재정비하고자 했다. 이러한 대주교의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 베슬러의 동료였던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요하임 카메라리우스가 1596년부터 정원을 재정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598년에 카메라리우스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미완성으로 남은 정원 설계를 베슬러가 이어 받았는데, 그에게는 한 가지 임무가 더 주어졌다. 바로 식물지 제작이었다. 대주교는 자신의 정원 속 식물들을 기록하여 식물지를 남기고 싶어 하였고, 베슬러의 감독 아래 수많은 전문가들이 약 16년간 협동·제작하여 나온 식물지가 바로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이다.
처음으로 식물을 ‘아름다움’과 ‘예술’의 대상으로 보다
‘식물=약’
《아이히슈테트의 정원》 이전, 16세기까지 식물은 그 자체의 모습이나 특징보다는 ‘약’으로서의 가치가 더 중요시되었다.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이 나오기 이전에도 오토 브룬펠스의 《생생한 식물도감》, 레온하르트 푹스의 《식물 탐구에 관한 주목할 만한 논평》 등과 같이 세밀한 삽화가 실린 식물지가 많이 출판되었지만, 이들 모두 약용 가치에 중점을 둔 의학서에 가까웠다.
이러한 동향 안에서 베슬러의 움직임은 달랐다. 그 역시 약제사였지만 대주교에게 식물지 제작을 부탁 받았을 때, 그는 무엇보다 식물의 ‘미적’ 특성에 주목했다. 베슬러와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의 의의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의학적인 시선으로만 보던 식물을 처음으로 아름다움과 예술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이러한 시선을 담은 식물지를 출판했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위대한 결과물은 현재 우리들에게 많은 영감과 흥미를 주는 ‘보태니컬 아트Botanical Art’의 초석이 되었으며, 베슬러는 보태니컬 아트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84개의 식물
367개의 동판화
4개의 계절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에는 총 1,084개의 식물이 367개의 동판화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식물들을 ‘계절’에 따라 분류하고 배치했다는 점이다. 식물들이 계절에 따라 꽃이 피는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어, 분류학적으로 상당히 거리가 먼 식물들이 같은 그림에 배치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에는 1년 365일 동안 계절이 움직임에 따라 정원이 변화하는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다. 다른 식물지들은 식물들을 강, 목, 속, 종으로 나누는 일반적인 분류 체계를 따른 것과는 달리, 이렇게 분류한 것에는 ‘아름다움’을 1순위로 삼은 베슬러의 의도가 담겨 있는 듯하다.
이러한 베슬러의 심미적 의도를 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동판’이다. 베슬러는 식물지 제작을 기획할 때부터 동판화로 삽화를 제작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전의 식물지는 대부분 목판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차별점이 있었다. 모든 삽화를 동판화로 제작함으로써 세밀한 식각이 가능하여 식물의 모습을 보다 온전하고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었다. 또한 만개한 상태의 식물들을 ‘색감’을 우선으로 배치해 실물과 가까운 크기로 그렸기 때문에, 모든 식물들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화롭게 담겨 있다.
두 가지의 《아이히슈테트의 정원》, 흑백판과 컬러판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은 약제사들의 참고 문헌과 같은 용도로 쓰인 흑백판과, 질 좋은 종이에 텍스트 없이 화려하게 채색한 그림만 실린 컬러판, 두 가지 판본으로 제작되었다.
책을 만드는 데 20명이 넘는 도안가, 조각가, 색채화가, 조판공 등의 협업과 1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으며, 이렇게 완성된 흑백판의 가격은 35플로린, 컬러판의 가격은 500플로린이었다. 컬러판은 5권에 해당하는 돈으로 대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값비싸고 화려한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완성된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의 컬러판은 제작을 후원한 대주교에게 헌정되었으나, 그는 책이 나오기 6개월 전, 완성된 책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클래식그림씨리즈 X 《아이히슈테트의 정원》
이러한 17세기의 위대한 식물지인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을 〈클래식그림씨리즈〉의 여덟 번째 책으로 출간한다. 〈클래식그림씨리즈〉의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에는 원서의 총 367개의 도판 가운데 ‘100개’를 선정하여 실었다. 또한 원정현 과학사 작가가 100개의 도판에 담긴 각 식물들의 원산지 및 특징에 관한 설명과 함께, 책의 초두에는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의 탄생과 이 책이 인류 문명사에서 갖는 의의를 해설하였다. 〈클래식그림씨리즈〉의 여덟 번째 책 《아이히슈테트의 정원》을 출간함으로써 또 하나의 인류의 위대한 발자취를 우리 독자들에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