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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

겨울 나그네

  • 이명환
  • |
  • 시인생각
  • |
  • 2020-03-21 출간
  • |
  • 308페이지
  • |
  • 152 X 222 X 27 mm /473g
  • |
  • ISBN 97911558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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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유헌宥軒이명환의 수필이야기
정연희여기에서는 명환의 별호別號 ‘유헌’이 있다 하여 호칭으로 쓰겠다. 송운이 그렇게 몽매에 그리워하던 유헌 이명환의 여대생 모습“그랬다. 할머니가 지어준 처녀 때 내 별명이 미수타 리였다. 할머니는 날더러 선머슴 같다고 ‘되련님’이니 ‘미수타 리’니 해서 웃기셨다. 대학 다닐 때 단벌 청바지에 윗도리만 바꿔 입고 봉두난발, 나는 거울도 안 보고 내 손으로 내 머리를 잘랐으니, 그것도 연필 깎는 자그마한 미제 면도칼로 말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의 ‘오드리 헵번’ 보다도 훨씬 짧게 쥐어뜯어 놓은 내 헤어스타일에 혀를 차시면서도, 누어있으면 선머슴 같은 외손녀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 (지상의 나그네, 외할머니 63쪽)그 무렵, 이화여대는 사치스러운 여대생의 별명일 정도로, 실상보다 더 화려함을 풍기던 때였는데, 유헌은 그런 모습의 여대생이었다.아홉 살이나 연상의 송운이 그런 선머슴 같던 유헌을 몽매에 그려 수없이 보낸 수 십 통의 편지와 시, 그 중에 「연애편지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라는 송운의 시를, 유헌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읽게 된 이야기는 우리의 흥미를 돋운다.“ ? 1963년 Chan. 이라는 탄생 년도와 서명을 새겨 갖고 있는 영묘한 물건이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다. 이름 하여 ‘연애편지의 무게를 다는 저울’. 1963년이면 내가 대학 4학년 때다. 이제는 고인이 된 남편 성 시인이 연애시절에 나에게 편지를 보낼 때 사용하던 실용품 저울이라 했다. 1966년에 혼인하여 한 집에서 살게 됐을 때 비로소 내가 본 물건이다. 1960년 대 초에 실제로 ‘연애편지의 무게를 달던 저울’이란다. 학교로 보내온 시는 읽어 본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수제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20그람 우표 한 장 / 40그람 우표 두 장이 예쁘고?작은?저울이?/?활화산?분화구의?정열을?실은연애편지의 무게를 달다니 /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저울은 정확히 / 내가 님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의열정의 등급을 매긴다. / 60그람 우표가 석장아아 100그람 우표가 다섯 장 / 이보다 더 예쁜 마술은 없다.벌이 날아 앉은 철쭉의 수술처럼 / 저울 바늘이 가볍게 가볍게 미동한다.섬세하게 눈금이 뚫려 있고 12cm 높이밖에 안 되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귀엽게 생긴 추錘가 장식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 보면 볼수록 예사 저울이 아닌 영물로 보인다. 정말 종이를 한두 장씩 올릴 때마다 바늘이 미동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살아 있는 물건 같다. 저울바늘이 문자판 끝가지 돌아가면 / 나 한 사나이는님에게 다이야 반지 하나쯤 선물한 기분이 되어 / 기쁘고 흐뭇하다.몇날 며칠의 노고도 사라진다.이 편지는?/?비록?우표?한?장짜리지만그 안에는 / 나의 심장을 쪼아서 완성한정상급 사랑의 소네트 한 쌍이 / 들어있는 것이다.이제 이 저울은 편지에 담긴 정성과 사랑을 감지하면서 무딘 나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는 기막힌 영물이 되었다. 그가 보낸 수많은 편지 중에서도 이 저울을 거쳐 내게 전달된 ‘사랑의 소네트 한 쌍’은 여러 모로 준비가 안 된 황량한 내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그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이번 수필집 ‘춘’ 마지막에 있는 「연애편지의 무게를 다는 저울」 일부다. 송운이 손수 만든 저울로 달아서 보낸 소네트, 심장을 쪼아서 완성한 정상급 사랑의 소네트 한 쌍이 돌같이 굳은 애인의 마음을 움직였던 모양이니, 이 얼마나 영묘하고 기상천외한 ‘사랑가’인가.연애니 결혼이니 안중에 없던 선머슴 유헌의 대학생활은 남달랐다.2학년에 써 낸 ‘젖할매’ 소설로 가작 입선, 다음 해 ‘디오니소스 ...’로 당선, 세상유행이나 눈치를 보는 일 없이, 단벌 청바지로 소설을 써낸 학생이었다. 당시 이대학보사의 ‘중편소설과 논문 현상 모집’의 당선상금이 한 학기 등록금을 내고도 조금 남는 액수였다. 유헌은 중학생일 때 시골집에서 수십 리 상거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닐 만큼 자의식이 강했고,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면 관철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집념 또한 강한 학생이었다. 음악에 관한 그의 소양과 미술 특히 나에게는 생소한 프랑스 19세기 화가 〈앙리 루소〉에 대한 열정, 그리고 서예에 집착했던 시절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로 열성이 대단했다.“집안에 흩어진 CD들을 모아보니 베토벤 교향곡 6번과 9번으로 토스카니니, 부르너 월터, 에리히 크라이버 등이 지휘한 것이 눈에 띠어 듣기 시작한지 ? 헐어빠진 손바닥만 한 ‘전원교향곡’ 악보를 찾아내어 근처 복사 집에서 확대복사까지 하여 목관악기들의 다양한 음색을 구별해가며 듣는 ? 이순이 넘은 요즘도 창문을 통하여 이런 궂은 날의 한여름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어깨가 축 처지게 침체해 있었던 기분이 조금씩 고양되는 듯싶어지기도 하면서 ? 뉴욕의 모던 아트 뮤지엄에서 본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꿈’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이승이 아닌 저승 같던 그림 ‘카니발 이브닝’ 워싱턴에 살고 있는 친구의 안내로 내셔널 갤러리에서 만난 ‘숲속의 랑데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신들린 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숲 앞에서 멍하니 정신 놓고 서 있는 나를 ? 눈부시게 화창한 날에는 애들 키우느라 한창 바쁘던 와중에도 어느 지루한 장마철에, 벼루를 찾아내어 천천히 먹을 갈아 학생 때 매일 대여섯 시간 씩 쓰던 당나라 안진경의 가묘비家廟碑나, 한예漢隷 장천비張遷碑를 마음을 다스리며 임서臨書하든지 먼지로 뒤덮인 피아노 뚜껑을 열고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아베마리아를 나직이 불러 본다든지.” (『지상의 나그네』, 雨期連作 50~53쪽)“막내를 가졌을 때 이렇게 비좁은 집에서 어떻게 아이를 다섯씩이나 키울 셈이냐고 대소가에서 말들이 많아, 부끄럽고 한심하여 혼자 눈물짓던 일이 생각난다. 아빠가 장손이므로 각종 행사나 제사를 우리 집에서 치러야 했으니까. ? 허드렛일 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라. 하느님께 공짜로 받은 선물인데 나를 위해서만,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만 시간을 쓰려는 이기심을 버리자. 그동안 가사노동과 잡다한 일상사를 좀 더 부지런히 기쁜 마음으로 해 낼 수도 있었는데, 8년 동안의 할머니 병수발도 그렇게 구름 낀 얼굴로 한숨 쉬면서 하지 말 것을 ?” (『나그네의 축제』, 딸에게 쓰는 편지 47쪽)“남편 Chan.의 작품은 내게 단순한 시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다. 그가 살고 간 시대의, 가까운 친인척과 우리 가족의 역사이면서 내 개인의 정신사이기도 하다. 그 시 속에 여러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 그가 떠나고 이런 저런 행사를 치르며 나는 그의 시를 깊이 음미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 시들에 전에 없던 독특한 음영陰影이 생겼다 할까. 그림자를 길게 짙게, 때로는 도포자락을 휘날리듯 겉모습까지도 시시각각 변화하며 하늘 높이 나른다.” (‘하’ 2번째 「성찬경의 시에 부치는 이명환의 이야기」)유헌의 수필에는 송운의 시 속에 빠져 있는 글 외에 그 나름의 ‘학구적인 탐구’와 ‘역사서歷史書’도 곁들여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대한 깊은 탐구와, 이대에도 왔었던 펄벅의 『대지』 춘원의 『흙』을 비교 연구하는 자세가 인상에 남는다. 영시를 전공한 성찬경 시인도 음악과 미술 특히 조각에 일가견이 있음을 일찍이 알고 있는 나로서, 두 사람의 취향이 맞아 더욱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낸 부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도 이 음악가를 좋아하지만 유헌의 슈베르트 사랑은 그 차원이 다름을 느꼈다.송운의 3주기 때 (2016년) 2월 26일 그의 기일에 맞춰서, 제사 겸 퍼포먼스를 곁들인 오픈 행사를 했다. 2. 26(金) 17:00부터 3. 9(水) 12:00까지 2주간에 걸쳐 인사동에 있는 ‘백악 미술관’에서 두 층을 빌려 대대적인 전시회를 열고 그 전시품들을 모아 『성찬경의 음암동 물질고아원』 ‘도록’을 출판했다. 평소에 버려진 고물들을 주워다가 만들어 놓은 작품들로 〈응암동 물질고아원〉 이라 제한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는 “백아무개 저리가라!”라며 진심으로 놀랍고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스스로 ‘응암동 물질고아원장’이라 하면서 써놓은 시도 일품이다. “성천 아카데미 이사님인 남우정 여사가 웃으면서 내 웃는 얼굴이 서산 마애불을 닮았다는 것이다. ? ”남우정 여사뿐 아니라, 친구들끼리도 유헌을 편안해 하는 것은 그에게서 그가 태어난 고향 산천의 향훈이 전해지는 까닭이었을 것이다. 서산 마애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하’ 마지막 「인간미 넘치는 신비한 백제의 미소」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심금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 오늘 나를 반겨주는 삼존불이 새삼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 아니런가. 왼손 끝 두 손가락을 구부려 늘어트리고 오른 손 바닥을 쫙 펴앞을?향하고?있는?시무외施無畏 여원인與願印,?즉?두려움을?물리치고?소원을?받아준다는 뜻의 부처님과 똑같은 자세로 나도 잠시 서 보았다. 때마침 불어온 미풍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으니 맑은 정적이, 천 오백년 묵은 곰삭은 정적이, 여명黎明처럼 밀려 와 나를 감싸누나. 생명의 신비 존재의 신비 안에 심신이 녹는다. 이 생과사가 하나인 서방정토 면형무아?形無我여!”‘추’의 마지막 작 「조선박물관 일본」과 ‘춘’의 대부분의 글 「응암동 수재민 주택」 이야기로 오늘은 끝내려 한다. 일본에 산재한 우리나라 문화재를 들어, 우리에게 일본인은 누구며, 일본은 어떤 의미의 존재인가를 차분하게 엮어간 글이었다.“금당벽화와 백제관음상 구세관음상 오층탑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 건축물 법륭사, 사천왕사, 봉황당이 있는 평등원, 금각사 ? 서거한 지 5백년이 지났어도 선불교와 청빈한 다도茶道의 창시자로 오늘날까지 흠앙받는?일휴一休 스님에?의해?재건된?대덕사,?일본?국보?1호?미륵보살상이?있는?광륭사, 행기스님의 동대사 등 이것이 모두 우리 조상이 피땀으로 이룬 일본 아스카불교문화의 소산임을 이번 여행을 통해 잘 배웠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일본이 다시 보인다. 나의 개안이다.”이 외에도 성찬경 씨가 원장인 〈응암동 물질고아원〉이 아니라 이명환 씨가 운영하던 〈음암동 수재민 주택〉에서의 혼인 초창기(1966-1075) 10년 동안의 생활 풍속도는,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수도와 냉장고는 물론 부엌에 하수구도 없는 ‘수재민 집’. 마당에 있는 우물이 김치 과일 냉장고였고, 다섯 아이 기저귀를 우물물로 빨아 널고 사는 이 집에, 새로 시집온 ‘이화여대 가정과’ 출신 사촌 동서가 인사차 왔다가, “울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형님이 웃고 있는 게 너무도 이상했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도 울지 않고 유쾌하게 웃는다. 그것도 송운의 고급 명시 「로마네스크」에 얹혀 술술 전개되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흥미진진한 만담漫談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된다. ‘춘’과 ‘하’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이 그 시절 풍경이다.경자년 정초에 정연희 쓰다

[추천사]
명환의 세 번째 수필집 추천사를 부탁받고는 한동안 난감했다. 우리는 대학 선후배나 문단 선후배랄 것도 없이 더러 만나 밥 한 끼 먹고 담소하는 사이로, 그의 타고난 푸근함이 편해서 임의롭게 만나는 친구다. 늘 한 고향 사람 같아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는 처지에 무슨 추천사를 쓰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평소에 부담 없이 읽히는 그의 글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번 신작을 꼼꼼히 읽고 편안히 내 느낌을 써 보자는 마음에 수락했다. 그동안 그가 발표한 글들을 대강 읽기는 하였으나 이번 신작뿐만 아니라, 전에 낸 두 권의 수필집도 다시 보고 싶어서 모두 보내 달라 했더니 분량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2020년 2월 부군인 성찬경 시인의 7주기 전에 책을 내고자 한다 하니 은근한 재촉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19년도 저물어 가는 11월 초의 일이었다. 명환은 2020년이 오기 전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경황없이 지낸 그간의 삶을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첫 수필집 『지상의 나그네』와 두 번째 책 『나그네의 축제』를 읽고 나니, 아주 오래전 〈이대학보사〉에서 공모하여 입선했던 중편소설 두 편이 생각나 그것도 보내 달라 청했다. 2019년 12월 31일에 빠른 등기로 배달된 이대 재학 시절의 소설을 읽느라 섣달그믐 밤을 꼬박 새웠다. 1961년의 가작 「젖할매」와 1962년의 당선작 「디오니소스의 후예」에서 만났던 소설가 이명환이 이제 수필가의 이름으로 세 번째 수필집을 상재하겠다는데 그 노정路程이 궁금해서다. 1962년 본심을 안수길 선생님과 당시 학장이셨던 이헌구 선생님, 영문과 소설 담당이신 나영균 교수가 맡으셨다. 원고지 400장이 넘는, 중편으로는 다소 무거운 「디오니소스의 후예」와 몇 편의 다른 소설의 예비 심사를 내가 맡았을 때, 영문과 3학년 학생의 소설로는 얼마간 사변적이기는 했지만, 독특한 주제와 탄탄한 문장력에 끌려서 학생 공모 작품이 아닌 소설로 읽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저 친구로 만나며 바라본 그의 삶은 그대로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출간된 그의 수필집 제호가 ‘지상의 나그네’ ‘나그네의 축제’이듯 그가 엮어 가던 천로역정의 삶은 그대로가 소설이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창세 47:9)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列朝와 다름없이 나그네와 우거寓居한 자라,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1역대 29:15)?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本鄕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히브 11:13) ????성경에서는 이 땅에 태어난 인간 모두를 나그네라 지칭한다. 가톨릭 세례명이 ‘사도 요한나’인 이명환이 이승의 나그네로서 찾아 나선 본향의 길이 그대로 천로역정이었다. 이번 수필집도 『겨울 나그네』로 할까 생각 중이라 했다.이명환이 송운松韻 성찬경 시인을 만난 것은 충남 예산여고에서 담임 김광회 선생(시인)의 특별한 소개였다. “장차 한국 시단을 이끌 대단한 시인이 예산농고 영어 선생님이다. 그는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서울문리대 영문과 출신이다.” 이렇게 해서 아홉 살 연상의 스승뻘 송운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명환을 알아본 것도 예사롭지 않았거니와, 그가 이대에 다니는 동안 선머슴 같은 이 여학생을 눈여겨보고, 이미 자리가 잡힌 기성 시인이 끊임없는 편지로 당신의 뜻을 전하고 이해시켜 아내로 맞기까지, 송운의 정성은 연애가 아니라 영혼의 길동무를 알아본 영혼의 노래였을 것이다. 졸업 후 고향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도 송운의 편지는 이어졌고, 드디어 결혼을 결심하고 송운의 아내가 되기로 했을 때 본인은 스스로를, 천성이 엽렵지 못하고 우둔한 내가 어쩌다 보니 번족한 대종손 집 맏며느리가 되었다며 한탄스러워 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옹색한 ‘응암동 수재민 주택’에 둥지를 튼 결혼 생활에서 십 년 동안에 줄줄이 다섯 남매를 낳아 길렀다. 사실 그 무렵 우리 또래 가운데 아이를 다섯이나 두는 예는 드물었다. 그의 삶은 단 한 뼘의 여유도 없이 시집살이와 아이들 치다꺼리로 영일 없는 나날이었지만, 그는 어떤 조건에서도 세월을 무심히 흘려버리지 않고, 소중한 것을 찾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감각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고단한 요한나의 일상은 그 자체가 그의 영혼에서 우러나는 고백의 글감이 되었다. 여섯 살 때 엄마를 떠나보낸 그의 삶에서 이승의 불가해는 깊었지만, 고통과 고독, 신산辛酸에서 불평이나 원망 대신 자신에게 부여된 환경에 숨어 있는 은총과 기쁨을 찾아냈다. 음악, 독서, 미술에 대한 소양과, 그의 나이 중반이 넘어 달려든 스키는 웬만한 여자는 꿈도 꿀 수 없던 레저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스키장에서 만난 밤하늘의 별과 신비스런 설원에서의 에피소드를 몇 편의 글로 남겼다.송운이 떠난 지 6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가 쓴 시에 얹어 자전적 글을 쓰면서 젊은 날을 회상하고 성찰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 많다고 흠 잡히던 어머니 이명환에게서 부모를 닮아 예술적 감각을 물려받은 4남 1녀 자녀들의 오늘은 눈부시다. 장남은 시인이며 뮤지션이고 차남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고명딸은 작가겸 작곡가, 3남은 가톨릭 사제로 부모와 가문의 신앙의 터 닦음이 되었다. 신심과 시심으로 맑은 삶을 길어올린 아버지와, 과감하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롓길을 홀로 두 번씩이나 다녀온 어머니의 자연회귀自然回歸에서 우러난 온갖 예지叡智를 물려받아, 주님께 산 제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요한나 이명환이 천로역정에서 거둔 열매들이다.송운의 시에는 영혼의 미세한 실핏줄이 시인의 그리움을 타고 알아볼 사람에게만 드러나는 애절함이 있고 그 애절함을, 명환은 송운을 떠나보내고 산문을 곁들여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올린다. 몇 편을 제외하고 대부분, 송운의 시를 렌즈 삼아 바라본 또 하나의 삶에서 추출한 글들로 이번 수필집을 엮었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진솔한 영혼의 고백이면서 때로는 사막의 교부에서나 만날 수 있는 묵상의 속삭임으로 남겨진 이야기들이다. 이명환의 삶 자체가 이러한 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고등학교 학생인 이 사람을 알아보고, 영혼의 교감을 이룬 송운의 영감적 심오함을 더하여 얻게 된 예술혼은 아니었을까. 얼른 보아 숫되기 이를 바 없는 그의 성정 어디에서 그렇듯 유려한 문장이 술술 이어지는지 신기했다. 남다른 어휘 구사력으로 사전을 찾게 만드는 그의 문장력은 이미 58년 전 대학생 때 보여 준 타고난 실력이었다. 그때 이미 기성 소설가 행렬에 들 만큼 원숙했던 소설이 두 편으로 마감된 것은 아쉽지만, 뒤늦게 수필로 틈틈이 써 내려가는 그의 글은 우리를 묵상 잠언箴言의 경지로 안내한다. 난감하던 숙제를 마무리하며 새삼 친구 이명환을 더 깊이 배운 계기에 감사드린다. 경자년 정초에 정연희 쓰다
정연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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