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수술실을 떠나지 않았던 외과의사인 저자가
산을 떠나지 않았던 선승 오현 스님과의 인연을 회상한 칼럼들과 함께
스님에게서 영감을 받은 시편(詩篇)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한데 묶어 펴낸 에세이집.
저자인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는 2018년 입적한 설악무산 오현 스님에게서 시 창작의 가르침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 의사 시인이다.
한국불교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입적한 오현 스님은 설악산 신흥사 조실로 선(禪)에 대한 독창적인 수행관을 펼친 대선사였을 뿐 아니라, 한국 선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대시인이기도 했다. 오현 스님의 권면과 추천으로 등단한 저자가 오현 스님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 오현 스님과 주고받은 선문답 같은 대화 등을 시, 산문, 서신 등 여러 형태의 글로 펼쳐놓고 있다.
3개의 장으로 나뉜 이 책의 제1장 ‘묵언의 만남과 헤어짐’에서는 만해마을에서 검을 인연으로 조우하며 첫 만남을 가진 이후,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느꼈던 삶의 교훈을 담은 산문을 실었다. 불교신문, 의사신문, 경기일보 등에 기고했던 그의 칼럼들에서는 외과의사의 날카로움보다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더불어 스님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특히 스님의 열반 후 다비장이 치러졌던 건봉사 연화대를 찾아 타고 남은 재를 더듬는 저자의 심정에 대한 묘사는 진한 감동을 준다.
제2장 ‘시에 어린 선승의 그림자’에서는 마치 말을 알아주는 백락(伯樂)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여 시단으로 이끌어준 스님에 대한 고마움을 저자의 시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시와 함께 그 시에 영감을 준 오현 스님의 시도 함께 싣고 있어서 시를 통해 교감하는 스승과 제자의 시적 정서를 어림해볼 수 있다.
제3장 ‘문자로 남은 염화미소’는 문학과 관련된 주제 이외의 일상사에 대하여 주고받은 안부 서신과 문자메시지들을 실어놓았다. 스님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끊이지 않는 저자의 애틋함과 가정사의 소소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스님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가 잘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