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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최남선의 신화 문화론

근대 최남선의 신화 문화론

  • 표정옥
  • |
  • 한국문화사
  • |
  • 2017-10-03 출간
  • |
  • 288페이지
  • |
  • 154 X 225 X 20 mm /439g
  • |
  • ISBN 978896817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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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책속으로 추가]
가야사 연구는 정한론, 청ㆍ일전쟁, 강제병합의 과정 속에서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 타율성이라는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임나일본부설’이 만들어졌고,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가야사가 연구되었다. 이러한 가야사 연구는 한일 양국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의 가야사 연구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위한 근거 제시에 불과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일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것이 가야사의 불행이었다. 가야사 연구는 더 이상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사학자들이 내세웠던 ‘일선동조론’이나 북한 사학자가 주장하는 ‘분국론’ 같이 민족적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내셔널리즘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현대적 국가의식의 과잉으로 투영된 고대 한일관계사의 복원도 경계되어야 한다. 호혜평등의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이룩하기 위해서 구시대의 식민사관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며, 일본은 한국에 대한 객관적 연구를 토대로 한 새로운 한국 사상을 수립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한국의 학계에서도 주지해야 하는 것이다.
칠지도에 대한 논쟁 역시 한일 고대사에서 역사적 혹은 신화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어 왔다. 백제는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은 백제에서 건너간 칠지도에 대해서 백제가 일본에게 바친 조공물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2012년 전라남도 순천 고분 발굴에서 대가야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일본의 고대 문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칠지도 역시 조공물이 아니라 단순한 선물이라는 게 우리 역사학계의 주장이다. 칠지도에 새겨진 내용을 보면, 후왕과 성음이 생겨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조공설은 억지스러운 논리로 보이는데도 일본은 백제가 일본에 조공물을 바친 주변국 나라였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임나일본부설과 함께 식민사관을 형성하기 위해 일본이 아전인수로 잘못 끌어들여 해석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면서 조선의 식민지화를 정당화시킨 일본은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부분을 들어 백제가 조공으로 바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일본서기』의 기록은 정확한 정사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역사적 사료와 유물로 허구임이 밝혀지고 있다.
현재 칠지도는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서 보관 중인데, 길이 74.9cm의 양 옆으로 모두 6개의 가지가 뻗은 철제 칼로 칼에는 앞면에 35자, 뒷면에 27자로 총 62자의 금상감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銘文)의 해석을 둘러싸고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서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해석 문제는 광개토왕릉비와 더불어 임나일본부설의 실재 여부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1977년과 1978년에 찍은 확대 근접 사진과 1981년 NHK에서 촬영한 X-레이 사진을 통해 보면 年자와 月자 사이에 十자가 검출되어 그동안 五月(5월)로 보았던 명문을 十一月(11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앞과 뒤의 글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앞면>
泰[和] 四年 十一月十六日 丙午 正陽 造百鍊鐵七支刀 [出]百兵 宜 供供侯王□□□□作
태[화] 4년 11월 16일 병오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만들었다.

<뒷면>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 爲倭王旨 造 傳示後世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귀하게 성음(聖音)으로 태어났다. 그런 까닭에 왜왕 지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칠지도 자료는 1945년 이전의 연구에서는 『일본서기』의 신공황후기에 언급된 칠지도가 실재함으로 『일본서기』와 신공황후에 대한 신빙성을 증명하는 것에 사용되었다.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에 대한 증거로 채택되어 한반도 병합의 역사적 이유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칠지도> 명문에 대한 해석이 본격화된 것은 1945년 이후 일본 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그들의 연구에 따라 명문이 61자인 것이 확인되었고, 이 칠지도가 한일 고대사의 중요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 신공기 52년 조에 언급되고 있는 칠지도로 해석하여 이 칼이 백제왕이 일본 천황에게 헌상했다고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설이나 칠지도보다 가장 큰 현실적인 논란 거리는 독도 영유권에 대한 두 나라의 논쟁이다. 『세종실록』(1454)에 “우산, 무릉 두 섬은 현 정동진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다. 두 섬은 부속 관계이고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고 불렀다.”라는 내용을 통해, 날씨가 좋으면 울릉도(무릉)에서 독도가 보이므로, 독도가 우산도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 즉, 우산국은 512년에 신라에 복속되었으니, 독도는 한국 영토인 것이다. 육당 최남선은 <울릉도와 독도>와 <독도문제와 나>에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일현의 역사적 기록들을 고증해내면서 프랑스가 리앙쿠르 섬이라고 부를 때까지 독도의 존재를 거의 모르고 있었고, 따라서 그 곳을 어떻게 부르는지조차 몰랐다고 말한다. 이 부분의 논의는 뒤의 최남선 국토와 신화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하겠다.
『일본서기』에는 신라에 대한 비하 발언이 자주 등장해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논쟁에서 늘 문제가 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라는 작고 추한 나라라는 논지를 자주 보이고 있다. 『일본서기』에 신라를 작고 추한 나라라고 일부러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그만큼 신라를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의 반감으로 보여 진다. 신화가 보여주는 일련의 갈등과 대결의 양상을 역으로 보여주는 논리인 셈이다. 신화는 있는 그대로를 적기 보다는 때로는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반대로 기입하기도 하고 다소 과장되어 기록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신화는 사실에 기반할 수도 있지만 사실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리 욕망을 투사시키기도 한다. 보다 객관적인 국제적 관점으로 과거사에 대해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현재의 동아시아의 우호적 질서는 가능할 것이다.

[책 소개]

우리시대에 신화는 문화 산업의 가장 큰 도구가 된 듯하지만, 불과 100년 전 신화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다르게 인식되고 있었다. 일제는 근대화의 명목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미신으로 매도하였고, 우리는 과학의 이름 아래 신화를 배척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의 쾌유를 위한 엄마의 간절한 기도와 소망이 동반되었을 때 의학은 아이를 더 빨리 낫게 한다. 우리에게 신화는 그런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의 핏속에 끓는 무형의 무한한 힘이었다. 그러한 신화의 힘을 망각하도록 조장한 일들이 일제 강점기 동안 참으로 많이 자행되었다. 이에 맞서 근대 지식인들은 여러 방편으로 일제의 문화전략에 맞섰다. 그 중에서 육당 최남선은 근대 문화 속에서 여러 소재 중 신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중요성을 피력했던 학자로 평가할 수 있다. 후기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나면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의 그의 학문적 업적은 눈부실 정도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최남선 초기 활동과 중기 활동에 집중해서 논의할 것이다. 후기 만주 건국대 시절 이후부터는 이 연구에서는 거론되지 못함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
내가 최남선을 만난 것은 오로지 삼국유사 때문이었다. 현대 문학을 전공했던 처지인지라, 신화와 맺은 인연이 다소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시작된 궁금증으로 찾아 간 인간의 문화와 연원에 대한 호기심이 신화를 연구하게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값지게 만난 책이 바로 삼국유사와 관련 문화 유적들이었다. 대학에서 내가 만난 학생들과 열심히 삼국유사를 읽고 현실 문제와 연결해서 난상토론을 펼치고, 외부 일반 시민들과도 다양한 방법으로 삼국유사의 흔적을 찾았고 재구성해 다시 새롭게 읽어 보려고 했다. 이쯤 되면 나는 보각국사 일연 스님에게 칭찬 한마디 들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연구를 하려고만 하면 반드시 만나는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 친일 인사라는 멍에로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근대 지식인 육당 최남선이 그 주인공이었다.
근대 최남선의 신화문화론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최남선의 신화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에서 근대에 어떤 신화 갈등과 신화 교류가 있었는지 그 배-경을 알필요가 있다. 한, 중, 일 세 나라는 과거 오래전부터 갈등의 역사를 반복해 왔다. 우리의 신화서와 일본의 신화서와 중국의 신화서에서 그려지는 갈등과 교류의 단면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남선이 신화 연구를 시작한 동기 역시 일본이 주장하는 단군부정론에 기인한다. 단군을 살리기 위해서 최남선은 삼국유사를 소중히 여기고 알리고 연구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부의 내용은 최남선의 본격적인 신화 논의의 서막과 같은 논의들이다. 동아시아 신화의 갈등과 교류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만 2부의 신화 논의와 3부의 논의들이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1부의 논의는 201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동아시아 공존의 신화 전략 연구>에서 기초적인 작업을 이어온 것이다.
2부의 내용은 근대 지식인 최남선이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았던 삼국유사 연구를 시작으로 신화담론을 연구한다. 3부의 내용은 최남선이라는 근대 지식인이 보여주는 융합적인 상상력에 대한 고찰이다. 3부의 내용이 융합적 상상력이라 이름 붙인 것은 다양한 학문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머리말] : 저자서평

신화가 만들어 낸 또 다른 근대
우리시대에 신화는 문화 산업의 가장 큰 도구가 된 듯하다. 그러나 불과 100년 전 신화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다르게 인식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미신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했고, 우리는 그것을 과학이라는 이름과 함께 별 저항 없이 신화를 배척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겠지만 아이를 위한 엄마의 간절한 기도와 소망이 동반되었을 때 의학은 아이를 더 빨리 낳게 한다. 우리에게 신화는 그런 오묘한 것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의 피 속에 살아 있었던 무한한 무형의 힘이었다. 그러한 신화의 힘을 망각하도록 조장한 일들이 일제 강점기 동안 참으로 많이 자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대 지식인들은 여러 방편으로 일제의 문화전략에 맞서 그 시대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 육당 최남선은 근대 문화 속에서 신화라는 도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중요성을 피력했던 학자로 평가할 수 있다. 후기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나면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의 그의 학문적 업적은 눈부실 정도이다. 모든 연구사를 전체로 보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면 이 연구는 친일 작가를 연구한다는 멍에를 가질 것이 분명하고 그런 역사적 평가에만 가치를 둔다면 분명 이 연구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자긍심을 주는 것도 연구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잘못 건너가게 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연구도 객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최남선 초기 활동과 중기 활동에 집중해서 논의할 것이다. 후기 만주 건국대 시절 이후부터는 이 연구에서는 거론되지 못함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
내가 최남선을 만난 것은 오로지 삼국유사 때문이었다. 현대 문학을 전공했던 처지인지라, 신화와 맺은 인연이 다소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시작된 궁금증으로 찾아 간 인간의 문화와 연원에 대한 호기심이 신화를 연구하게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값지게 만난 책이 바로 삼국유사와 관련 문화 유적들이었다. 대학에서 내가 만난 학생들과 열심히 삼국유사를 읽고 현실 문제와 연결해서 난상토론을 펼치고, 외부 일반 시민들과도 다양한 방법으로 삼국유사의 흔적을 찾았고 재구성해 다시 새롭게 읽어 보려고 했다. 이쯤 되면 나는 보각국사 일연 스님에게 칭찬 한마디 들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연구를 하려고만 하면 반드시 만나는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 친일 인사라는 멍에로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근대 지식인 육당 최남선이 그 주인공이었다.
나는 대학원 시절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제외하고 육당 최남선의 목소리를 일부러 찾아본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화 중 신화와 종교와 민담 등에 관심을 갖게 되자 늘 만나는 사람이 최남선임을 부인할 수가 없게 된다. 1974년 현암사에서 나온 최남선 전집을 거금을 들여서 사서 읽기 시작했다. 2003년 도서출판 역락에서 나온 최남선 전집도 구입해서 참고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한문투와 근대에만 사용한 용어들이 다수 있어서 쉽게 독해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서 읽어 보았다. 소리 내서도 읽어보고, 녹음해서 직접 들어도 보고, 차분히 눈으로 속독도 해보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텍스트 자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데에는 다소 역부족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2013년 경인문화사에서 최남선 전집이 24권으로 나와 주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학교에 한 질 사서 두고, 집에 한 질 사서 두고 틈나는 대로 읽어보았다. 그간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이 이렇게 잘 정리되어서 나온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매한 학자에게 무한 이용 승차권을 준 기분이었다.
최남선 읽기를 다양하게 전개해 볼 수 있는 학문적 즐거움을 누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글들에서 연구되는 텍스트는 현암사, 역락, 경인문화사 등 세 개의 참고문헌이 함께 각주로 등장함을 깊이 양해해 주길 바란다. 당시에 연구의 자취들인지라 참고문헌을 하나의 출판사로 통일시키는 억지스러운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최남선 읽기는 크게 네 가지 방양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연구도 그것의 분류에 상당히 영향 받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신화론>과 관련된 논의들을 들 수 있다. 사실, 신화는 워낙 다양한 텍스트에 양념처럼 흩어져 있어서 몇 개의 텍스트만 예를 들어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단군론>과 삼국유사 논의들에 대한 것이 많다. <사론, 종교론>을 통해 전설과 민담 연구도 다양하게 진행했다. 둘째, <기행문과 종교 연구>를 들 수 있다. 최남선은 근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까지도 관심을 두고 여행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여행은 단순히 여행을 즐기는 차원이 아니었고, 우리나라의 고유한 종교와 신화체험의 의도적인 여행이었다. 백두산근참기, 심춘순례, 고적답사기, 만몽문화, 송막연운록, 금강예찬, <풍악기유> 등을 대표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이들 텍스트들은 종교체험과 신화체험을 향한 기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초창기부터 진행되었던 역사 연구를 들 수 있다. 광복 후까지 진행된 국토의 역사 연구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역사 인식은 친일 전 역사의식과 친일 시절 역사서와 광복 후의 역사서가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어 기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43년 <고사통>에서는 한국 역사의 세계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기술된 반면에, 1947년에 작성한 <국민조선역사>에서는 민간 설화의 세계성, 고려의 세계와의 연락, 조선의 세계의 소식, 최근의 세계 정국의 파동 등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인식이 두드러지고 있다. 넷째, 다양한 문화론들을 들 수 있다. 최남선은 1927년 불함문화론에서부터 문화를 독특한 시각에서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가 바로 민족의 자존심이 된다는 문화 중심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론>, <조선상식문답>, <조선상식문답 속편>, <시가문학>, <근대 문명 문화론>, <민속문화론>, <시문독본> 등 다양한 문화 연구들이 존재한다.
최남선이 차지하는 역사와 문화의 자리는 너무나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온전히 부분을 도려내면, 문화라는 치마 자락에 큰 구멍이 생길 것이다. 바느질로 꿰매면 아주 흉하게 모양이 변해버려서 다시 입기 힘든 치마처럼 어색하기만 할 것이다. 따라서 1918년 ≪소년≫지의 시작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근대사를 보다 잘 들여다보는 만화경으로 최남선 연구는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학문이 미시적으로 분과화 되는 상황에서 학문의 통합적 연구와 융합적 사유는 최남선에게서 얻을 수 있는 커다란 미덕 중 하나이다. 그는 역사, 신화, 종교, 예술, 문학, 과학 등 각 학문의 영역들이 모두 만나는 융합적 연구를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융합의 시대에 최남선을 연구의 화두로 삼아 연구하는 의의를 하나 더 얹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남선의 연구는 방대한 고전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또한 중요한 방점을 찍고자 한다. 나는 대학에서 교양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융합적 글쓰기>를 다양한 전공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연계 전공으로 <한국의 종교와 문화>를 가르치고, 교양 핵심으로 <신화와 여성문화>를 가르치고, 일반교양으로 <지역 사회 역사와 현대 문화>도 가르치고 있다. 어찌 보면, 최남선의 연구가 모두 내 교과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나는 근대 지식인이 새로운 지식을 구성하는 범주로 삼았던 신화, 종교, 기행, 문화 등의 범주를 그대로 내 연구에서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감히 인용해서 연구의 의의를 찾고 싶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최남선의 신화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에서 근대에 어떤 신화 갈등과 신화 교류가 있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는 신화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왔다. 이미 역사적으로 오류로 입증된 임나일본부설이 여전히 일본의 일부 교과서에 현재형으로 실리고 있는가 하면, 중국은 분단의 한반도 상황을 역이용해서 은근슬쩍 동북공정을 주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 중, 일 세 나라는 과거 오래전부터 갈등의 역사를 반복해 왔다. 우리의 신화서와 일본의 신화서와 중국의 신화서에서 그려지는 갈등과 교류의 단면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남선이 신화 연구를 시작한 동기 역시 일본이 주장하는 단군부정론에 기인한다. 단군을 살리기 위해서 최남선은 삼국유사를 소중히 여기고 알리고 연구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부의 내용은 최남선의 본격적인 신화 논의의 서막과 같은 논의들이다. 동아시아 신화의 갈등과 교류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만 2부의 신화 논의와 3부의 논의들이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1부의 논의는 201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동아시아 공존의 신화 전략 연구>에서 기초적인 작업을 이어온 것이다.
2부의 내용은 근대 지식인 최남선이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았던 삼국유사 연구를 시작으로 신화담론을 연구한다. 삼국유사는 최남선 연구의 후반부까지 줄기차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학을 논할 때도 예술을 논할 때도 모든 논의의 근거는 삼국유사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다음으로 진행한 연구는 최남선의 국토 순례 기행과 신화와 종교에 대한 연구이다. 고적답사부터 시작한 기행은 전국의 산천을 답사하는 계기가 된다. 전라도를 50여일 답사한 심춘순례를 위시해서 금강산을 여행한 <풍악기유>와 금강예찬을 거쳐 백두산을 삼가 아뢰러 가는 백두산근참기까지 매우 많은 기행문이 작성된다. 최남선이 단행한 기행문은 단순한 산천 기행이 아니라 의지적 신화 발견의 종교적 순례와 같은 행위였다. 그는 나라 곳곳에서 민족의 혼을 찾고 신화를 다시 기억하며 그 기억에 많은 사람을 초대하고자 하였다. 최남선이 근대 지식인으로서 선각자다운 면모를 보인 것 중 하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바다라는 공간에 대한 미래 가능성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에서부터 최남선은 소년과 바다의 세계에 초지일간 되게 주목한 바 있다. 이는 반도사관을 주입시키려했던 일본에 대한 강한 반발의식이면서 동시에 해양이라는 세계에 눈을 뜬 선각자다운 식견이었다.
3부의 내용은 최남선이라는 근대 지식인이 보여주는 융합적인 상상력에 대한 고찰이다. 현재 우리의 학문은 지나치게 분과화되어 있고, 지식의 칸막이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소설은 고전소설에서 그 사상적 원류를 두고 있음에도 고전과 현대는 지나치게 막혀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문 안에서의 칸막이가 이러하다 보니 학문 간 경계는 더 단단하게 막혀있을 수밖에 없다. 18세기 성호 이익과 19세기 다산 정약용만 보더라도 학문이라는 것은 매우 통합적인 인식이었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필요하면 서로의 학문에 도움을 주는 범주 안에서 활용되었다. 다산이 쓴 마과회통은 단순히 의학서가 아니라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조직을 이야기하는 종합적인 책이었다. 육당 최남선의 학문 역시 그러하다. 백과사전과 같은 그의 학문적 관심과 열정에 혀가 내둘러질 뿐이다. 시가문학에서부터 역사와 신화와 종교와 과학과 의학과 서예와 금석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은 실로 방대하다.
3부의 내용이 융합적 상상력이라 이름 붙인 것은 다양한 학문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여기에서는 네 가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첫째, 국토를 둘러보면서 육당이 가지는 융합적 사유 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일본이 토끼 모양이라고 한반도를 폄하할 때 육당은 토끼가 아니라 포효하는 호랑이를 그려냈다. 두 번째는 의학을 다루는 육당의 자세를 살펴볼 것이다. 의학 논의에 있어서도 인문학적 사유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가지는 관심은 육당이 가지는 종교에 대한 관심이다. 특히 불교에 대한 전방위적인 관심을 융합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이 연구는 연구재단의 2012년 신진 과제로부터 시작된 지적 호기심이 발단이 되었다. 그 후 2014년 신진 과제에서 더 본격적으로 심화 확장되어 지금까지 6여 년 정도 최남선 근대 문화와 신화 연구가 이어져 왔다. 아직 최남선 연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아쉬운 대로 1차 신화와 문화론을 내놓기로 한다.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근대 지식인들이 가지는 지식에 대한 열정에 금세 숨이 턱 막힐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식을 탐하는 힘들지만 즐거운 일을 하는 지라 근대 지식인들의 지적 탐사를 뒤쫓는 일은 고통보다는 행복이 더 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평소에 연구는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잘 호흡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다시 반문하면서 최남선을 읽고 배우고 비판하였다. 내가 이 시대에 100여 년 전 치열하게 연구를 진행했던 학자들의 정신을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지 반성하는 시간으로 연구의 시작을 소박하게 열고자 한다. 이 연구에도 늘 가족은 함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감사한 마음을 글자 한자 한자에 담는다.

2017년 9월 20일
저자 씀

목차

제1부 현대 동아시아 신화적 상상력의 문화적 갈등과 교류
제1장 신화, 역사와 문화 갈등의 현장에 서다
1. 한국 신화에 기술된 동아시아 신화의 갈등
2. 중국의 동북공정과 신화적 갈등들
3.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신화적 갈등

제2장 신화, 역사와 문화지식 교류의 중매자가 되다
1. 한국 신화에 펼쳐진 자주정신
2. 중국 신화 속 불함의 군자국
3. 일본의 천일창 신화와 이즈모 신화 속 한국


제2부 근대 지식인 최남선의 역사적 상상력과 신화 상상력
제3장 ?삼국유사해제?: 신화로 문화적 욕망을 펼치다
1. 400년 만에 다시 되찾아 온 ?삼국유사?
2. 대립적 민족의 의미규정과 문화의식 형성
3. 단군에 대한 기억과 신화화를 통한 문화민족 구축
4. 신화의 정치적 전략과 근대성 추구

제4장 ?심춘순례?: 불교 사찰 기행으로 조선 신화의 흔적을 찾다
1. 기행과 체험을 통한 신화 찾기
2. 불함문화의 체험공간으로서 ?심춘순례? 기행
3. 조선의 신화와 교호하는 ???사상과 사찰기행
4. 조선 불교와 조선 신화의 신화적 상상력의 교감

제5장 바다의 인식: 신화적 미래 기획으로 문화 정체성을 찾다
1. 대륙의 내부 시선에서 해양의 외부 시선으로
2. 지리적 역사관을 통한 문화적 역사관 구축
3. ‘바다’에 대한 기억 재구성으로써 신화성 구축
4. 망각을 깨우는 의지와 도전의 문화사로써 미래기획

제3부 근대 지식인 최남선의 종교 문화와 융합적 신화 상상력
제6장 국토의 융합적 인식: 신화로 근대 심상 공간을 기획하다
1. 지리인식과 역사 인식의 상관성
2. 시간의 경계를 넘는 문화적 국토의 환상성
3. 민족의 신화관과 융합된 국토의식
4. 의지적 신화의 국토인식과 독도에 대한 주장

제7장 근대 인문적 의학담론: 신화 상상력으로
융합적 사고를 기술하다
1. 신화로 바라보는 진화된 문화담론
2. 신념의 신화에 비춘 의학 독창성의 통시적 역사 고찰
3. 창의적 의학 전파 성공담을 통한 자주적 민족의식 고취
4. 조선의 근대 의학에 나타난 융합적 인문정신 고찰

제8장 불교인식: 근대 역동적 문화 지식으로 불교문화를 바라보다
1. 근대불교의 문화적 역동성
2. 민족의식의 대결적 코드로서 불교문화
3. 국토 인식의 상징적 표지로서 불교문화
4. 문화 민족의 견인차로서 불교문화

저자소개

저자 표정옥은
- 서강대학교 영문과와 동대학 일반대학원 국문과 졸업.
-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강대학교 학술연구교수와 서강대 국문과 대우교수 역임
- 현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2008년, 2010년 학술원 우수도서상, 2013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수상, 2014년 한국연구재단 사후 우수저서 선정, 선리 학술상, 김구아카데미 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다른 곳에서도 여러 논문 및 저서 연구가 선정되었다.

도서소개

우리시대에 신화는 문화 산업의 가장 큰 도구가 된 듯하지만, 불과 100년 전 신화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다르게 인식되고 있었다. 일제는 근대화의 명목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미신으로 매도하였고, 우리는 과학의 이름 아래 신화를 배척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의 쾌유를 위한 엄마의 간절한 기도와 소망이 동반되었을 때 의학은 아이를 더 빨리 낫게 한다. 우리에게 신화는 그런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의 핏속에 끓는 무형의 무한한 힘이었다. 그러한 신화의 힘을 망각하도록 조장한 일들이 일제 강점기 동안 참으로 많이 자행되었다. 이에 맞서 근대 지식인들은 여러 방편으로 일제의 문화전략에 맞섰다. 그 중에서 육당 최남선은 근대 문화 속에서 여러 소재 중 신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중요성을 피력했던 학자로 평가할 수 있다. 후기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나면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의 그의 학문적 업적은 눈부실 정도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최남선 초기 활동과 중기 활동에 집중해서 논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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