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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양심

법과 양심

  • 김우창
  • |
  • 에피파니
  • |
  • 2017-08-10 출간
  • |
  • 336페이지
  • |
  • 140 X 210 mm
  • |
  • ISBN 9788955968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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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1. 선생은, 초면의 학생에게 아주 긴 말씀을 들려주셨다. 1973년인가, 74년인가. 정확한 연도의 기억은 없지만, 재수 아니면 삼수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뒤늦게 친구로부터 간신히 <세대>지를 구해 황급히 ‘한국시의 형이상’을 읽었다. 이상한 글이었다. 좀 어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깊이와 분위기였다. 그처럼 압도적인 교양과 지식으로 무장된 글들이 그렇게 담담하게 쓰여지다니, 한국 현대시를 서정주와 함께 형이상적 실패의 시로 규정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읽히게 하는 그 글의 고요한 치열성은 내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선생은 단호한 주장을 하는데도 서두름도, 어떤 설교의 흔적도 보이질 않았다. 깨닫고 많이 아닌 이 특유의 가르치려 하는 거드름도 오만함도 전혀 없었다. 그 당시의 많은 유명한 글들과 너무 달랐다. 명령하고 단정하는 글이 아니라 성찰하고 스스로 사유하는 글은 본 적이 없었다. 설교를 안 하다니···. 이상하고 궁금했다. 이 글을 쓴 분은 어떤 분일까. 고대 영문학과에 계셨다.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렸다. 찾아뵙고 싶다고.
지금 생각하면 참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었다. 선생의 강의를 듣는 학생이나 제자도 아닌 재수하는 학생이 마구 전화를 드려 그냥 찾아뵙겠다고 하니 난감한 일이셨을 것이다. 선생께선 그러나 허락하셨다. 날짜도 요일도 잊었지만 시간은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점심 식사 후 그러니까 오후 한 시에 연구실에서 보자는 말씀이셨다. 문과대 어둡고 어수선한 복도를 거쳐 선생의 연구실 문 앞에 12시 50분쯤 도착했다. 선생께선 12시 58분에 오셨다.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시더니 방문을 여셨다. 선생을 따라 쭈빗쭈빗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몇 시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어둑어둑해져서 연구실을 나왔다. 먹먹했다.

초면인, 어린 학생의 그 치기 어린 행동과 질문에 선생께선 마다 않으시고, 특유의 진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오랜 시간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엄혹한 시대였다. 아무나 만나고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되는 시기였다. 까딱하면 간첩단 사건이요, 이른바 프락치들이 날뛰던 때였다. 기억한다. 선생은 말씀하셨다. 학생의 그 고민과 열정을 높이 평가한다. 공부해라. 시간을 아껴라. 마르크스가 혁명적일 수 있었던 것은 깊고 넓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깊이가 없으면 넓지 않고, 넓지 않으면 깊을 수가 없다. 혁명을 위한 혁명이 아닌, 진정한 혁명의 사고는 깊고 넓지 않으면 결코 가질 수 없다고 그렇게 선생은 마르크스의 예를 들어 설명하셨다.
충격이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이 시퍼렇게 눈에 불을 켜고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감시하던 때이다. 미니스커트나 장발 단속은 물론, 금지곡과 금서를 만들고 무슨 불온서적소지죄인가 하는 것으로 국민의 정신 상태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시대였다. 그런데 마르크스라니. 가슴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그 뜨거움을 안고, 하나 둘 켜지는 캠퍼스의 가로등을 보며 안암동 고대 운동장을 한참을 빙빙 돌고 또 돌았다.

2. 선생은, 항상 맨 나중에 주문하셨다. 메뉴판에 적혀 있는 것들 중에 값이 낮은 음식으로. 선생을 편집인으로 모시고 하는 인문학 계간지 <비평>의 편집회의는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매달 점심 식사를 끼고 진행되었다. 편집위원과 또 편집담당자도 함께하는 회의는, 식사 주문을 하게 되는데 으레 선생께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여쭈면 항상 먼저들 시키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고르면, 후에 선생께선 이것으로 하겠다고 맨 나중에 주문을 하셨다. 처음에는 몰랐다. 선생께서 시키시는 음식이 그 집에서는 제일 가격이 낮은 음식이었는지. 당신께서 싼 음식을 주문하면 다른 사람들이 혹시 그것에 따라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을 가격 때문에 시키게 될까 염려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물론 아무 말씀이 없으셨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하는 짐작이다. 그러나 그 후로도 선생을 모시고 하는 식사 자리에선 언제나 그러셨다. 언제나 그 식당에서 비교적 값이 저렴한 음식으로, 대부분 다른 사람이 주문한 다음 시키신다는 것은 기실은 오랜 시간 선생과 식사를 한 후에, 어느 날, 문득 깨달은 사실이다.

3. 선생의 방은 어두웠다. 선생께서 고대 대학원장을 맡고 계실 때였다. 무슨 일인가로 원장실을 찾아갔는데 방이 너무 어두웠다. 마침 사무보는 과장님이 계셔서 “너무 어둡네요, 불 좀 켜시지요” 하고 여쭈니 그분이 웃으면서 “원장님께선 해가 있을 때는 전등을 안 켜세요”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선생 댁도 항상 춥고 어두웠다. 그래도 여긴 고려대학교 대학원장실이 아닌가. 물었더니 원장님 당신 자신과 연관되는 모든 비용은 최소한도로 다 줄여놓으셨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최근에야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차를 바꾸셨지만 선생의 차는 오랫동안 현대 포니엑셀이었다. (최근 바꾸신 차도 오래된 초창기 아반테이다.) 너무 낡고 초라해 그 차를 타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당연히 승차감도 안 좋고 특히 오래되어 고장도 많았다. 선생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계실 때, 조직위원장실이 있던 경복궁의 고궁박물관 쪽 경비원이 조직위원장의 주차 자리에 이런 ‘똥차’를 들어오게 할 수 없다고 가로막은 일이 있었다고도 한다. 선생께서 대학원장을 끝으로 고대를 정년퇴임하실 무렵,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조명한 논집 《사유의 공간》과 대담집 《행동과 사유》를 출간하고 작은 학술발표회와 기념식을 가졌다. 선생을 좋아하는 몇몇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고 그중 몇은 선생의 검소한 삶을 화제로 삼아 선생의 차를 문화 뉴스로 다루려 하였다. 선생은 웃으셨지만 단호했다. 내 차가 그런 것은 내 처지에 그 차가 알맞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크고 비싼 차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사람이 그럴 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내 처지에 맞아서 타고 다니는 차가 특별한 문화 기사가 될 수는 없다는 말씀이셨다. 기사를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어느 해인가 겨울, 선생 댁에 고양이들이 아주 많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꽤 많은 고양이들이 다리가 불구인 게 아닌가. 여쭈어봤는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겨울 평창동 아스팔트 언덕길에서 차 사고로 다리를 다친 고양이들이 자기 먹을 것을 찾아 먹지 못하고 얼어죽을까봐 한두 마리 눈에 띄는 것들을 데려다 놓으셨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다.)

선생의 옷은 대체로 단정하시다. 하지만 선생이 입고 계시는 와이셔츠의 목깃이나 손목깃이 해져서 너덜거리는 걸 아주 다 감추시진 못한다. 은발이 너무나 아름다우신 사모님께서, 선생께서 옷을 안 사시고 안 버리셔서 속상할 때가 많다고 하실 정도이다. (어쩔 수 없다.)

딱 한 번 여쭈어본 적이 있다. “선생님처럼 우리 모두가 산다면 지구가 지금처럼 하나여도 괜찮지 않을까요.”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무슨 근거에서인지는 말씀 안 하셨지만 “아마, 한 세 개는 있어야 될 거요”라고.
참, 선생의 자제들 중 한 분이 중학교 1학년 때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서울대 역사상 최연소 입학 및 최연소 졸업자이며 금세기 최고의 업적을 보여준 수학자 중 하나인, 영국 옥스퍼드대학 석좌교수 김민형 박사라는 사실을 알리면, 선생께서 야단치실까. (죄송하지만 이미 말하였으니 또 어쩔 수 없다.)

목차

도덕의 빛과 힘―타락한 세계에서의 양심과 정의
정의와 양심
양심의 문제 / 민주화투쟁: 자유와 평등 / 평등의 여러 차원 / 정의와 권리 / 생명의 권리 / 생존의 두 방식 / 인간의 평등과 존재의 고귀함 / 정의를 위한 투쟁과 도덕적 초월 / 투쟁과 온화한 덕성
양심의 여러 모습
양심의 권형(權衡) / 양심과 정치 / 자존심과 양심 / 관용과 화해 / 부정의의 상황/사려/자비 / 슬픔의 인식론 / 현실과 양심의 비극적 결단 / 산업 근대화와 민주화/사실적 지혜와 양심 / 근대화와 민주화
행복과 정신적 덕성
도덕의 영웅적 차원과 일상적 차원 / 행복지수 / 경제, 행복, 윤리
짧은 결론

법, 윤리 그리고 생활 세계의 규범
법과 형
교통 규칙 이야기
법치와 덕치
동아시아의 전통
법, 규범, 생활 세계
황폐한 세계에서의 법
근대적 법치와 민주주의
정치와 법의 주체
자유와 덕성
별이 있는 하늘과 도덕률
윤리와 인간 상황
결론을 대신하여

인문적 사고: 양심에 대한 단면적 고찰―로버트 볼트의 『모든 계절의 사람』
서론: 오늘의 현실과 인문과학의 물음
볼트의 『모든 계절의 사람』: 양심
연극의 주제
마키아벨리즘/작은 사실 속의 큰 주제
양심의 현실 시험
현실 역사의 진행: 양심과 현실 정치의 변증법
양심의 실존적 의미와 인간적 의미
자아의 근본으로서의 양심 그리고 여러 가지의 양심
양심의 현실 시험
양심의 인간과 역사
인문적 사고

사회적 도덕: 이념과 사실적 조건
정의의 문제?도덕의 문제
도덕적 결단과 판단?시장 논리와 이익의 관점
개인의 이익?개인의 자유/공공성?인간의 자유
정의에 대한 확신과 갈등
이성의 보편적 원칙
‘상생의 계약’/사회적 협약/사회적 유대감
공동체주의
도덕적 선택
칸트적 이성의 도덕과 개인적 집단적 이해 관계
신의 율법과 정치 공동체의 법
구체적 현실에 들어 있는 이성
도덕의 기초, 전통과 서사
프로네시스, 이성과 덕성
비극은 현실의 일부
도덕과 위선적 명분
영광과 포상에 잠재된 도덕적 부패의 가능성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도덕률
요약, 결론을 대신하여

법률인과 부도덕한 사회
시작하며
자기완성의 행복
부도덕한 사회의 도덕적 인간
생활, 정신, 윤리, 법 / 법과 윤리 / 부도덕한 사회에서의 도덕적 인간 / 규범을 위한 결단
윤리 의식의 변화
윤리 / 인간관계의 감정과 이성 / 평등과 규범
예의?윤리?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
예의
윤리적 자각과 그 불확실성
규범과 그 기초. 상호존중의 사회 / 깨달음의 복합적 의미 / 개인적 자유/사회적 자유
판단의 객관성과 지각적 균형
법 과정의 숙고와 결단 / 윤리, 도덕, 양심 / 양심, 규범, 문화, 보편성 / 법과 이성 / 양심과 법 체제
체험의 주관성과 판단의 객체성
지각적 균형 / 삶의 이야기로서의 소설 / 공평한 관측자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서열적 인간관계 / 제도의 허위 / 사실의 진실
도덕률의 지상명령

도서소개

현실에서 양심의 갈등과 도덕의 위험에 대한 섬세한 고찰

어떻게 법과 양심은 현실 속에서 움직이는 도덕과 윤리, 인간의 위엄과 행복의 원리가 될 수 있는가? 현대 한국인문정신의 절정, 김우창. 그가 보여주는 인간의 선함과 그 가능성에 대한 깊은 신뢰, 현실에서의 양심의 갈등과 도덕의 위험에 대한 섬세한 고찰! “지금 우리에게는, 도덕적 명분과 신념을 앞세우는 단정과 명령에서 벗어나 법과 사실을 존중하면서 인간의 깊은 양심을 생각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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