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게서 탐색하는 치유와 희망의 가능성들
2011년 시전문 계간지 『시현실』 신인상을 수상한 임후남 시인이 데뷔 6년 만에 첫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를 출간했다. 임후남의 첫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치유나 희망의 가능성들을 탐색한다. 가령, “아주 작은 풍경 한 개, 오천 원을 주고 산/ 풍경 하나가 사람의 길을 열어”(「풍경」)준다고 말한다. 인사동에서 오천 원을 주고 산 풍경 하나를 통해 위태롭거나 아픈 생이 아니라 ‘사람의 길’을 엿보기도 하고, “아버지가 걸었던 산길에서 주운/ 이 쪼그맣고 볼품없는 산밤이 맛있어서/ 조금씩 아껴 먹는다 못난 내게/ 참 순한 아버지가 지금에야 온다”(「산밤」)고 한다. 유년에는 보잘것없고, 하찮게 느껴졌던 ‘산밤’ 몇 톨을 통해서 시인은 비로소 ‘참 순한 아버지’를 생생한 현실로서의 현재로 초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목욕탕에서 팔순 노모와 때를 밀며, ‘엄마와 나 사이’ 끈질긴 ‘세월의 때’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 즉 늦은 오후나 끝물로서의 ‘후’가 아니라 면면히 이어지는 생명력의 우로보로스적 순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씨간장」이란 시에서 햇간장에 씨간장을 조금 보태는 이 작은 행위가 ‘나→엄마→할머니→(기억 없는) 할머니’로 이어지는 ‘손맛’, 훅은 생명의 연쇄를 불러온다. “네 입맛대로 해”라는 엄마의 충고는 표면적으로는 자기 맛을 찾으라는 주문 같지만, 사실 그것은 시간의 지혜가 농축된 말 그대로 ‘다디단 맛’의 ‘속삭임’이다. 시인은 문득 ‘지금은 햇살이 사라지는 오후’임을 인식하지만, 이 ‘오후’는 시인이 나무나 숲 언저리, 혹은 삶의 옛 터전들에서 만났던 그 오후가 아니다.
모든 서정시는 태생적으로 주관적이고 독백의 성향을 내포할 수밖에 없지만, 임후남 시인이 풀어내는 정조의 숨결을 따라서 공감하게 되고, 이 공감의 힘으로 힘겨운 또 하루를 조금은 더 행복하게 지나갈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시는 무목적의 목적을 항상 지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