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수대울에서 월명산으로
마흔 살을 갓 넘기던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과
새벽의 짙은 안개를 정신없이 찍으러 다니던 그때,
서종의 한 골짜기를 이슬비 내리는 이른 새벽에 들어가며 느꼈던 황홀한 기분 때문에
십칠 년이라는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삼 년 전 정초 어느 추운 겨울날,
우연히 지나친 군산의 옛 거리, 오래된 집에 넋이 나가
정신없이 수리하고 짐을 옮겼다.
이천십몇 년도의 도시임에도 날이 저물면
어릴 때 뛰어놀던 골목길(할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꾸중을 섞어 부르시던)의
조용함이 느껴지는 곳,
집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집.
팔 곱하기 십 크기 인화지에서 시작한 암실 작업이 어언 삼십육 년,
어두운 밤, 응접실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그동안의 ‘안개’, ‘눈’, ‘새벽’……, 더 거슬러 올라가 돌아보는 ‘별거 아닌 풍경’의 작업들,
그 과정에서 부딪혔던 여러 난관과 새로운 시도들,
그리고 이제 내 마음이 머물러 있는 이곳에서 담기 시작한 ‘물가’ 시리즈를.
빛이 깊게 어우러지는 그 순간을 담아내는 매혹된 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