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치장하지 않아 더욱 아름다운 서정!
유종인 시인의 네 번째 시집『사랑이라는 재촉들』. 1996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화문석’외 9편이 당선되며 등단한 저자의 이번 시집은 시인의 자화상과 시작詩作에 대한 반성이 담긴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에 대한 한계를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파하고자 한 저자는 서와 화의 정신으로 현재의 시가 가진 문법을 해체 한다. 말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에 맞서 싸우다 얻은 고뇌와 화해하기 위해 동양화적 시선으로 옮긴 ‘풀’, ‘꼽추 여자 대추 따는 남편’, ‘연밥을 후비고 가는 새들’, ‘그 밤의 영정’, ‘개복숭아나무의 저녁’ 등의 시편들을 통해 만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만물에 담긴 저자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살구 두 개가 있는 밤 중에서
늦봄마저 다 물렀겠지
살구 두 개가 냉장고에 남은 걸 알 듯이
늦된 시간이 어물쩍
그걸 늦된 살구에 맡겨놓았다는 듯이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니
달은, 누가 저들만의 밤 회식 자리에 불러 간 모양이다
누가 은쟁반도 받치지 않고 가져갔나
나는 살구의 유감(有感)을 먹는다
엊그제가 발인인 당신은
혀가 굳어 이 살구를 맛볼 수 없고
짐짓 천지간(天地間)의 모오든 것들이
당신을 맛볼 차례니,
당신의 유감은 캄캄하게 여러 맛이다
묵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