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반복의 존재론
조용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이번 시집에서 저자는 지나쳐온 혹은 아파했던 기억들을 끌어안고 가장 아프고 슬픈 자리마저 긍정하며, 담담하면서도 깊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색깔과 소리를 따라가며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을 동시에 감각하는 공감각의 미학적 기예에 도달한 저자는 이와 같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색과 음, 묵과 현으로 구축된 세계는 무수한 기억과 그 기억의 반복으로 살아있는 그곳, 바로 지구와 저자 개인의 상처와 슬픔들을 아름다운 언어로 담아내며 완성된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불안의 운필법’, ‘당신의 손’, ‘메밀꽃이 인다는 말’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세심한 사유로 생의 표면을 더듬어 이면의 본질까지 읽어내는 저자의 시세계를 오롯이 만나볼 수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풍경의 해부
저렇게 많은 풍경이 너를 거쳤다
저렇게 많은 풍경의 독이
네 몸에 중금속처럼 쌓여 있다
올리브나무 사이 강렬한 태양은 언제나 나의 것,
너는 올리브나무 언덕을 지나갔다
양귀비들은 그 아래 붉게 흐드러져 있다
바다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알시옹처럼
너는 운명을 다스리는 힘을 가졌다
이곳의 햇빛은 죄악을 부추긴다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불가해한 세계가 바로 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