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임학수 시선

임학수 시선

  • 임학수
  • |
  • 지만지
  • |
  • 2012-11-20 출간
  • |
  • 110페이지
  • |
  • 148 X 210 mm
  • |
  • ISBN 9788966804917
판매가

16,000원

즉시할인가

14,40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4,4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1931년에 등단해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시문학≫, ≪문학≫, ≪신인문학≫, ≪인문평론≫ 등 동인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현대 영시선≫과 소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 찰스 디킨스의 ≪이도애화(二都哀話)≫ 등 번역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임학수를 모른다. 1930년대 후반 ≪전선시집≫과 같은 일제의 국책에 협력하는 문필 활동을 했고 6ㆍ25 전쟁 중에 납북되어 말년까지 북한에서 영문학자로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친일과 납북으로 금기시된 그의 시, 이제는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때다.

931년 <우울(憂鬱)>과 <여름의 일순(一瞬)>을 ≪동아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한 임학수(林學洙, 1911∼1982)는 1930년대 초반부터 6ㆍ25 전쟁 이전까지 시인이자 영문학 번역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1937년 시집 ≪석류(石榴)≫(1937)의 간행을 시작으로 해방 전 ≪팔도풍물시집(八道風物詩集)≫(1938), ≪후조(候鳥)≫(1939), ≪전선시집(戰線詩集)≫(1939)을 냈고, 해방 후에도 시집 ≪필부(匹夫)의 노래≫(1948)를 낼 정도로 활발히 시작 활동을 했다. 더욱이 그는 1930년대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김영랑, 박용철 등과 활동하면서 1933년 12월에 창간된 순수문학 동인지인 ≪문학(文學)≫에 참여하여 박용철과 함께 순수문학을 주도하기도 했다. 또한 1934년 신석정, 김영랑, 유치환 등이 중심이 된 ≪신인문학≫의 동인으로도 참여했으며, 1939년 최재서가 주재한 ≪인문평론≫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뿐만 아니라 역시집 ≪현대 영시선≫(1939)과 소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1940), 찰스 디킨스의 ≪이도애화(二都哀話)≫(1941)를 번역하는 등 번역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처럼 임학수는 1930∼1940년대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1930년대 후반 ≪전선시집≫과 같은 일제의 국책에 협력하는 문필 활동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6ㆍ25 전쟁 중에 납북되어 말년까지 북한에서 영문학자로서 활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일과 납북은 그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게 만들었다. 물론 1980년대 중반 해금 이후 그에 대한 논의의 길이 열리긴 했으나 여전히 그에 대한 논의는 빈약한 형편이다. 이로 인해 임학수 문학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유보된 상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시 세계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등한시되어 온 납ㆍ월북 문인의 연구를 통해 우리 현대 문학사의 총체적인 복원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임학수 시인의 납북 이전의 평들은 대체로 서정성을 기초로 낭만적인 세계관을 보여 준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는 서정을 밑바탕으로 하여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보여 줄 뿐더러 일제 치하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슬픔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 그는 서정성을 밑바탕으로 하여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설움과 절망을 그리면서도 우리 민족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하려 했다. 비관적 현실 속에서도 그가 끝까지 믿었던 단 하나는 우수한 우리 민족의 문화와 거기에 깃든 정신이 우리를 희망의 날, 즉 그가 꿈꾸는 ‘새날’로 인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유시뿐만 아니라 기행시, 산문시, 풍물시 등과 같은 실험 정신이 엿보이는 시들을 통해 그날을 기원하고 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황군작가 위문단의 일원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쓴 ≪전선시집≫으로 인해 친일 작가로 낙인찍히고, 6ㆍ25 전쟁 때 납북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그의 문학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으며, 앞으로 그의 문학에 대한 많은 연구와 정당한 평가가 있길 기대해 본다.

목차

≪八道風物詩集≫
人定閣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3
北漢山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5
南漢山城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6
崇禮門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8
慶會樓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9
八角堂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0
鐘路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2
南海에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3
石窟庵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4
石窟庵 觀音像의 노래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6
高麗磁器賦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7
太極扇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9
朴淵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
滿月臺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3
上八潭 古事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5
海金剛에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6
天仙臺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7
叢石亭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8
落花巖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9
江西大墓 天神圖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30
雙楹塚 九人 供養圖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32
밤 停車場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34
萬波息笛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36

≪匹夫의 노래≫
棕櫚樹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41
겨울의 노래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43
自畵像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45
秋風嶺에 올라 北方을 바라며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47
搖籃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49
曠野에 서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51
拉濱線 安家에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53
哈爾濱驛에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54
松花江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56
바다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57
散步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58
꿈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60
山居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61
別離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62
하이커의 노래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64
새날을 맞음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66
東方의 靈山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68
獅子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70
기다림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71
싸움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73
흐르는 불빛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74
落葉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75
나의 太陽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76
불을 켜라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78
즐거운 설날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80
데모크라씨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83
快晴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85
가까워 온다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86
行列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88
언제나 오느냐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90
閑山島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91
豫言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93

해설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95
지은이에 대해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05
엮은이에 대해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08

저자소개

저자 임학수(林學洙)는 1911년 7월 3일 전남 순천군 순천읍 금곡리 214번지에서 부친 임화일(林和日)과 모친 이가절(李佳節)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임학수의 본명은 학수이나 영택(榮澤: 족보명), 악이(岳伊: 개명 전 이름), 내홍(乃洪: 보통학교 학적부 이명) 등 네 개의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9) 선생은 그의 15대조이며, 할아버지 임계옥(林桂玉)은 부농으로 상당히 많은 소작 농토를 두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임화일은 신식 문명에 깨어 있었으며, 해방 전부터 순천 읍내에서 금방을 운영하여 임학수의 집안 살림은 넉넉한 편이었다.
1936년 1월 임학수는 경성제대 동기 동창인 이정호의 누이동생 이호순(李浩順)과 연애결혼을 했으며, 1939년 경성부 청량리정 25의 7번지로 이사를 하면서 호적도 옮기고 그 후 몇 번 더 이사를 하면서 처 이호순과 채윤, 채강, 채문, 채령 네 딸과 함께 단란한 가족을 이루며 살기도 했다. 하지만 6ㆍ25 전쟁이 일어나 장녀 채윤과 셋째 채문이 먼저 부산 동생네로 떠나고, 뒤이어 합류하기로 했던 임학수와 처 이호순, 그리고 두 딸은 납북되어 서로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또한 임학수는 북에서 다섯째 딸 채성과 장남 채호를 슬하에 둔다. 순천공립보통학교를 나와 경성제일고보를 거친 그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경성제대 영문학부를 다니며 주로 관심을 기울인 시인들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인 바이런이나 셸리, 키츠 등이며, 이는 당시 영문학과 학과장이었던 사토 기요시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요시의 전공은 영국 낭만파 시였으며, 강의나 연구도 바이런, 키츠, 셸리 등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임학수의 졸업 논문 역시 이러한 영향 아래에서 셸리의 시 <해방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Unbound)>였다. 임학수는 1936년부터 1945년까지 경성제대 조교, 호수돈여고, 경신여고, 한성상고, 배화여고, 성신여학교 등에서 교원으로 재직했으며, 해방 후 고려문화사 주간과 ≪민성≫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1945년부터 1947년까지는 서울사범대 교수, 1947년에는 숙명여대 강사, 1949년에는 이화여대 강사로 일했으며, 같은 해 고려대 교수에 취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50년 6ㆍ25 전쟁이 일어나면서 교수직에서 해임된다. 1931년 동아일보로 등단한 임학수는 이후 1951년 납북되기까지 20여 년 동안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으며, 시집 ≪석류≫, ≪팔도풍물시집≫, ≪후조≫, ≪전선시집≫, ≪필부의 노래≫ 등을 펴냈다. 뿐만 아니라 번역 시집으로 ≪현대 영시선≫, ≪19세기 초기 영시집≫, ≪초생달≫, ≪챠일드 하롤드의 편력기≫ 등을 남겼고, 편저로는 ≪현대조선시인선집≫, ≪시집, 조선문학전집10≫ 등이 있다. 번역물로도 ≪일리아드≫(상, 하), ≪이도애화≫, ≪세계단편선집≫(1, 2), ≪슬픈 기병≫ 등 10여 권이 넘는다. 그 외 소설, 희곡, 시 등의 번역 작품이 남아 있다. 그는 문단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시문학≫ 동인으로 김영랑, 박용철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1933년 12월에 창간된 순수문학 동인지인 ≪문학≫에 참여하여 순수문학을 주도했다. 또한 1934년 노자영, 신석정, 김영랑, 유치환 등이 중심이 된 ≪신인문학≫의 동인으로 참여했고, 1939년에는 최재서가 주재한 ≪인문평론≫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1982년 72세의 나이로 작고한 것으로 알려진 임학수는 김일성대학 어문학부 교수ㆍ학장 및 평양 외국어대학 영어과 강좌장을 지냈으며, 말년까지 교편을 잡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또한 외국 문학을 번역 소개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벌여 왔다고 북한에서 간행된 ≪문화예술사전≫(1989∼1993)에 기록되어 있다.

도서소개

1931년에 등단해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시문학≫, ≪문학≫, ≪신인문학≫, ≪인문평론≫ 등 동인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현대 영시선≫과 소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 찰스 디킨스의 ≪이도애화(二都哀話)≫ 등 번역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임학수를 모른다. 1930년대 후반 ≪전선시집≫과 같은 일제의 국책에 협력하는 문필 활동을 했고 6ㆍ25 전쟁 중에 납북되어 말년까지 북한에서 영문학자로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친일과 납북으로 금기시된 그의 시, 이제는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때다.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 070-4821-5101
교환/반품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856 303호 / (주)스터디채널 / 전화 : 070-4821-5101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