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장 뜨겁고 은밀한 안쪽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살아 꿈틀거리는 언어로 고백하는 아름다운 악행의 기록 『언니에게』. 이영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언니’라는 단어 속에 내포된 여러 가지 의미를 통해 시인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그녀의 시는 그 자체 ‘내부’로부터 출발한다. 내부의 바닥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더욱더 모호하고 안개에 휩싸인 것들의 소멸과 재생의 순간들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내부를 사유하며, 내부로부터 외부를 꿈꾸는 것이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태도이다. 단순한 제목 아래 상상하기 힘든 기괴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며, 자아와 동일화된 무수한 타자를 통해서 시인의 내면 풍경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편!
언니에게
겨울밤에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밖에서 안으로, 아무도 없는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차가운 칼날 같은 손잡이를 떼 낸다. 손잡이가 있으면 한 번쯤 돌려 보고 배꼽을 눌러 보고 기하학적으로 시선을 바꿔 볼 수 있을 텐데. 어머니가 방바닥에 늘어놓은 축축한 냄새들.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버섯들이 있었는데, 잠에서 깨면 어머니는 버섯 머리를 과도로 똑똑 따고 있었다. 손잡이를 어디에 붙여야 할까. 너는 아래쪽에 서 있다. 몸속이 어두워질 때마다 울음을 터트리는 이상한 반동. 축축하게 썩어 들어가는 안쪽을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너는 봉긋하게 솟은 버섯 같은 자신의 심장에 손잡이를 대고 안쪽을 열어 본다. 거꾸로 자라나는 버섯들이 잠에서 깨어 어머니의 머리를 똑똑 따 내고 있다. 네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바깥에 두고 온 손잡이를 어두워서 찾지 못할 때, 아무도 없는 안쪽이 버섯 모양으로 뒤집어질 때, 너는 성에 낀 202호 창문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