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성을 뒤집는 섬뜩한 인식과 능청스러운 해학!
현대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미당 서정주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제12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2012): 봄밤』. 한국정신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널리 알리고자 제정된 문학상으로, 한 해 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모든 시를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의 논의와 토론을 거쳐 그 해의 가장 좋은 작품을 선정한다. 2012년의 수상작은 권혁웅의 ‘봄밤’으로 결정되었다. 최고의 상상을 하게 하는 일상시의 출발점이며, 일상시가 일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모순들을 은유하는 장점을 가졌고, 잘 빚어진 시라는 평을 받은 수상작과 수상시인의 자선시, 수상시인이 쓴 연보, 수상시인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연애시와 정치풍자시를 넘어 일상시까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보폭이 넓고 새로운 언어를 탐구한다는 평가와 해학이 묻어나면서도 서정과 실험이 접점을 이루는 말의 운용이 돋보인다는 평, 그러면서도 일상에 대한 자각과 개인의 이야기를 타인의 삶으로 확대하는 능란함도 엿보인다는 평가까지 받은 권혁웅 시인의 수상시 ‘봄밤’과 그이 직접 고른 자선시 ‘도봉근린공원’ 외 28편을 수록하였다. 더불어 고영민, 김영승, 김이듬, 유종인, 이근화, 이원, 함기석, 허수경, 황병승 등 최종후보에 오른 시인별로 각 6편의 시 작품과 함께 예심을 맡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과 함께 소개한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봄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함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그가 전 생애를 걸고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