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의 기록이자 명상의 기록!
장석주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오랫동안』.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슬픔과 분노, 절규와 고백을 결합한 순정하면서도 격정적인 시를 써온 저자의 이번 시집은 노자와 장자에 대한 주석 달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이후부터 방대한 독서와 동양 사상에 대한 깊은 천착을 바탕으로 삶의 관조와 사유를 시 속에 담아낸 저자는 55편의 신작시를 통해 주역시편과 더불어 언어의 한계, 인식의 한계까지 꿋꿋하게 나아가고자 했다. 삶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체험을 수반하고, 삶을 관조하며 그것의 비의를 찾아내는 깊은 시선을 담아낸 ‘하루-주역시편ㆍ202’, ‘슬픔의 고고학-주역시편ㆍ991’, ‘느리게 걷자-주역시편ㆍ515’ 등의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안성
- 주역시편ㆍ177
산수유 붉은 열매를 등 뒤에 두고
돌부처 한 분,
세월을 빚는 청맹과니구나.
눈도 코도 뭉개지고
남은 건 초심뿐.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으니
무심하구나.
꽃 지고 붉은 열매가 지기를
기백 번,
또다시 꽃 없는 가을이
저 목련존자의 얼굴 위로
지나가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