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강정과 성년 강정이 교차하는 정거장!
강정 시인의 네 번째 시집『활』.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에 ‘항구’ 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저자의 이번 시집은 두 번째 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과 세 번째 시집 <키스>와 더불어 3부작을 구성하고 있다. 활을 당기고 있는 순간의 긴장, 그때의 몰입, 그때의 적막이 삶의 절정의 순간과 같다고 이야기한 저자는 그와 같은 절정의 팽팽함이 도사리고 있는 시편들을 통해 비로소 자신만의 한 세계를 이루었음을, 그리고 동시에 그 세계로부터 이제 다른 세계로의 비상을 예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별사’, ‘나는 신이다, 라 적힌 일기를 읽은 날’, ‘설인의 마지막 꿈’, ‘선인장 입구’ 등의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지나간, 그리운 오열
연민에 사무쳐 흙을 퍼먹으며 울던 시절
길 가던 아이가 무슨 못된 생물을 살피듯
눈동자를 떨어뜨리고 지나갔다
구르는 눈알 속에서
새 한 마리 흙을 쪼며 퍼득퍼득 기어 나와
지구 뒤편 숨은 그림자를 펼칠 때,
먼 곳의 높은 탑이 기우뚱, 스스로를 의심한다
식도를 넘어선 흙알갱이들이 반죽한
붉은 별들의 끝없는 행렬
슬픔의 도돌이표인 양,
신의 항문에서 흘러나오는 설사인 양,
물오른 저녁의 헛것들 사이로
내가 퍼먹은 흙 자리에 피어난 검은 꽃
꽃의 뿌리에서부터 사선으로 갈라지는 대지
연방 새가 몸 안에서
먹빛이 된 하늘을 꺼내는 동안,
한 식경 전에 바라본 세계가 내 안에서 빠르게 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