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는 세계의 기표들 위에 덧대놓은 우울과 침잠과 고독과 분노
제12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 이준규 시인의 세 번째 시집『삼척』. 2000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자폐’외 3편을 발표하며 등단한 저자의 이번 시집은 제12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한 ‘복도’를 비롯하여 그간 여러 문예지에 발표하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적어내려 갔던 시편들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상상한 것들이 아닌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을 본 것을 그대로 적어내려 가고, 도감에나 나올 법한 새 이름이나 나무 이름을 반복하면서 의미와는 상관없이 리듬감을 갖고 음악적인 언어를 완성한다. 이를 통해 들끓는 사유 속에 숨은 평정심, 폭발적인 말들 속에 숨은 깨달음을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경계와 한계를 깨뜨리는 독특한 언어관과 시학이 담긴 ‘이것은’, ‘그것은’, ‘그것의 끝’, ‘바람이 불었다’ 등 67편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너의
창을 연다. 계단을 오른다. 너의 새는 머리가 없다. 너의 새는 어둠의 파란 언저리에 산다. 너는 의자에서 일어난다. 너는 흐르는 소름이다. 너는 계단을 오른다. 창을 열고, 목을 꺾고, 오른쪽을 보았다가 왼쪽을 보고, 귀신을 앞에 앉히고, 귀신과 섞이고, 너는 마르고, 이하처럼 마르고, 너는 소름이고. 문득, 너는 파란 어둠 속으로 진입한다. 소용돌이치는 틈. 너희들이 본 암혈. 별은 대각으로 움직였고, 너는 수직으로 타락했다. 너의 밤, 그리고 너의 시.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