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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

  • 김월회
  • |
  • 현암사
  • |
  • 2016-08-29 출간
  • |
  • 272페이지
  • |
  • 128 X 199 X 20 mm /309g
  • |
  • ISBN 9788932318103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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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시대를 뒤흔들고 문명을 전복해온 동양과 서양의 고전(古典),
고전의 탄생과 부침, 그것을 둘러싼 권력 관계,
인문의 힘이 만들어낸 오랜 역사의 궤적을 일목요연하고 깊이 있게 천착한다!!


중국 학술 사상, 문학을 연구해온 김월회 교수(서울대 중어중문학과)와 서양 고전문헌학자 안재원 교수(서울대 인문연구원)가 동양과 서양, 그리고 그 문명을 만들어온 고전의 부침과 생멸의 역사, 그에 얽힌 역학 관계를 날실과 씨줄로 다채롭게 엮어낸 책이다. 아울러 ‘인문적 시민 교육’ 문제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는 두 학자는 고전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짚어보는 한편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전 읽기를 바탕으로 하는 인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하며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동양(중국) 고전을, 다뤘고 2부에서는 서양 고전을 다뤘다. 1부와 2부는 각각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양 편은 김월회 교수가, 서양 편은 안재원 교수가 나눠 집필했고, ‘나가는 말’은 공동으로 집필했다.

문명의 요람이자 때로는 문명의 창조적 파괴자로, 동서양의 어제와 오늘을 견인한 고전
모든 고전이 태어날 때에 이미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대다수 고전은 집필되는 순간부터 고귀한 책으로 대접받지는 않았으며, 나름의 역정을 겪으면서 고전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 또 그 후에 고전은 시대를 흔들고 문명에 균열을 가하면서 자신의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한번 고전은 영원한 고전’인 것도 아니다. 고전도 생성과 소멸, 유전과 재생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다.
한 권의 책이 고전으로 거듭나는 과정에는 적잖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고전도 사람처럼 나름의 삶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한 권의 책이 어쩌다 고전이 되었고, 고전으로서의 삶은 또 어떠했는지, 그것을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등등을 다룬다. 고전의 삶 자체가 아닌 그것에 간여한 여러 힘들에 초점을 맞췄다. 다시 말해 전근대 시기 중국과 유럽에서 어떤 책이 고전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또 고전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힘들이 간여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해 글이라는 문명 장치를 고안해냈다면, 글을 유포하고 전승하는 일은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일구며 살아가는 한, 빠뜨릴 수 없는 중차대한 과업이다. 곧 교육이 문명의 유지와 전승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삶과 사회의 유지와 전승, 갱신에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현실 권력이 간여했음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어떤 책이 고전으로 거듭남을 다룰 때 정치를 비롯한 현실 권력이라는 요인을 주되게 다룰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책들이 고전으로 거듭나고 그것으로 살아가는 과정에 간여한 주된 힘으로 고전 일반론, 인문학, 교육, 현실 권력 등을 꼽는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 경전(經傳, 정전)과 고전(古典)
근대가 되기 전, 중국에서 경전은 유교의 오경(五經)과 사서(四書)로 대변됐다. 오경은 『시(詩)』, 『서(書)』, 『역(易)』, 『춘추(春秋)』, 『예기(禮記)』를 말한다. 기원전 1세기 무렵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유교를 제국의 최고 통치 이념으로 정립시킨 이래로 경전의 자리를 줄곧 지켜온 텍스트이다. 사서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으로, 12세기 무렵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성리학에서 내세운 새로운 경전의 체계였다. 이들은 관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텍스트였다. 또한 관리를 꿈꾸지 않는다고 해도 지식인을 자처하는 한에서는 반드시 익혀야 했다. 거기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역사와 우주에 대한 앎이 모자람 없이 담겨 있다고 믿었다.
경전은 ‘경(經)’과 ‘전(傳)’의 합성어로, ‘경’은 성인(聖人)이 저술하거나 편찬한 텍스트이고 ‘전’은 그러한 경에 현인(賢人) 그러니까 성인에 버금가는 이가 붙인 해설이라고 간주됐다. 그래서 경전은 ‘예부터 있어온 책들’ 곧 고적(古籍)이나 고전(古典)이라 불리던 것과 동등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범접하기 어려운 권위가 서린 책’만이 경전이라 호명될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경전은 그저 열심히 배우고 익히기만 하면 되는 책이 아니었다. 관리나 지식인으로 살자면 말할 것도 없고, 그저 평범한 사회인이 되고자 해도 경전에 담긴 대로 사유하고 살아가야 했다. 그 결과, 경전을 익힌다는 것은 거기에 서려 있는 권위 아래 자신을 복속시키는 행위가 되었다. 경전은 단순한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경전은 선택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니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예부터 있어온, 고적 또는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 가령 역사서나 제자백가들의 책, 문학작품 등이었다. 실제로 이들 텍스트는 경(經)과는 다른 자세로 읽혔고 사유되었으며, 각각의 성향에 따라 ‘사(史)’나 ‘자(子)’, ‘집(集)’이라 명명되면서 경과 구분되었다. 경과 구분되었으나 경과 무관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 또한 예부터 있어온 참조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검증된 텍스트이기에 경을 보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평가됐다. 그 결과, 이들은 경과 함께 ‘경사자집(經史子集)’으로 병칭되며, 경이 중심인 텍스트 세계의 어엿한 일원으로 자리가 매겨졌다. 경을 중심 또는 정점으로 하여 사와 자, 집에 해당되는 텍스트들이 위계적으로 배치됐던 것이다.
이처럼 경전을 정점으로 여타의 고전이 위계적으로 배치된 후 그것이 마치 ‘텍스트 세계’의 전부인 양 제시되는 양상은 고대 중국에만 있었던 특이함은 아니다. 서양의 역사에서도 이른바 ‘고전(liber classicus)’이 탈세속적 권위를 지닌 경전(canon, 정전)과의 관계에 따라 그 밑에 배속되거나 내쳐지는 방식으로 위계화되어 있었음을 목도할 수 있다. 적어도 고전이 경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찾게 된 계몽주의 시대 전까지는 『성경』이란 정전 밑에 놓여 있었다. 경전을 중심으로 수행된 ‘책들의 위계화’는 이른바 ‘고등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목도되는 현상이었다.

고대 중국인들이 경전을 대하는 길은 애초부터 섬김 하나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소 역설적으로까지 보이지만, 『시』, 『서』, 『역』과 같은 텍스트가 경전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장본인이랄 수 있는 공자는 경전을 종주로 받들어 섬겨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 적이 없다. 도리어 그는 “여섯 가지의 학예에서 노닌다[游於藝]”라고 말함으로써, 경전을‘노닒[游]’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여기서 그가 말한 노닒은 어떤 고차원적 경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생활 세계에서 산책하듯 한가로이 노니는 것이다. 내 삶이 경전에 위배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나를 경전에 비춰봄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경전을 노닒의 터로 삼아 유유자적 노닐어보자는 것이다. 경전과 나 사이를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매개하는 것보다는 경전과 나 사이에 아무런 장애도 없는 것이 경전을 삶에 더욱 밀착시킬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결국 공자에게서, 경전을 섬겨야 한다는 지향과 경전을 노닒터로 삼자는 상반된 지향이 다 나온 셈이다. 이 가운데 앞의 지향은 근대에 들어 해체되었다. 그럼으로써 경은 오늘날 통용되는 고전 개념에 부합되는 텍스트로 그 위상이 재조정되었다. 또한 경전 아래에 위계화되어 있던 사, 자, 집의 텍스트들도 경과 동일한 반열의 고전으로 자립하였다.

고전은 중국 역사를 만든 배후
전국시대 순자(荀子)는 공자의 사유에 법가의 사유를 접목함으로써 공자의 사유를 장래에 펼쳐질 대일통(大一統)의 시대에 걸맞게 변이시킨 바 있다. 한 제국을 대표하는 경학가 정현(鄭玄)은 한의 법가적 통치를 유가의 경전으로 정당화하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런가 하면 한 제국이 망하고 도래한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대에는 도가의 관점에서 유가의 학설을 재해석한 현학(玄學)이라는 새로운 학술이 출현했다. 그들은 유가의 주요 경전인 『역경』을 도가의 세계관을 기초로 재해석해냈고, 공자의 어록인 『논어』마저 도가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도가를 꾸준히 이단시해온 유가였던지라, 현학은 유가와 법가, 법가와 도가의 융합만큼이나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 자체였다. 그런데 송(宋) 제국에 이르자 유가의 이러한 변이는 파격은커녕 기본이 되었다. 앞선 왕조들처럼 유교를 제국의 최고 통치 이념으로 채택한 송은 유가 경전에 대한 해석의 체계를 확립하고자 했고, 그 결과로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가 갖춰졌다. 이는 13종의 유가 경전에 대한 역대의 주석 가운데 제국이 선택한 주석을 정통으로 공인한, 유가 지식 체계의 집대성이자 총화였다. 그렇다고 거기에 유가다운 주석만 들어 있지는 않았다. 예컨대 『역경』의 주석본으로는 위진남북조시대 현학을 정초한 왕필(王弼)이 도가의 관점에서 붙인 주석이 채택되었다. 『논어』도 도가의 관점이 전제된 하안(何晏)의 집해(集解)가 정통으로 채택되었다. 정통 유가의 주석이 아닌 현학의 주석이 정통으로 꼽힌 셈이니, 유가의 고갱이는 그렇게 도가의 숨결과 한 몸을 이루고 있었다.
송 제국 이후 1,000여 년간 동아시아를 석권한 성리학에도 상극의 숨결이 있었다. 불가는 이른바 ‘오랑캐’의 문물이라는 점에서 주희로부터 배척되었다. 그럼에도 그가 집대성한 성리학엔 우주론부터 인간에 대한 설정, 공부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불가의 흔적이 고루 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성리학처럼 제국 최고 통치 이념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명대(明代)를 대표하는 학술인 양명학도 마찬가지였다. 성리학의 경직성과 교조적 성향 등을 비판하며 명대 중엽 이래 한자권을 풍미했던 양명학도 주요 내용 전반에 걸쳐 성리학과 마찬가지로 ‘불가의 옷을 입은 유가’라는 성향이 한층 더 강해졌다. 청대(淸代) 학술을 대표하는 고증학(考證學)에서도 이단의 포용이 목도된다. ‘서양 오랑캐[洋夷]’·‘서양 귀신[洋鬼]’ 등으로 무시하던 서양, 그들 학문의 실증과 논리를 중시하는 덕목이 명대 말엽 이래 마테오 리치 등의 예수회 선교사에 의해 소개되었고 이는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고증학의 정신과 학문 태도와 멋지게 섞였다.
어느 한 시기일지라도 제국을 대표하거나 풍미했던 이념이 되려면, 제국의 최고 통치 이념처럼 모순이나 상극, 이단이되는 것들과 융합을 일궈낼 수 있어야 했다. 게다가 ‘오랑캐’에 대한 근본주의적 반응을 보인 성리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랑캐’인 몽골의 원 제국에 이르러 제국의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중국이라는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선 자신들을 ‘오랑캐’라며 극단적으로 배척한 이념일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여 활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차원에서는 이처럼, 표방되는 것의 한편에는 상극마저 한 몸으로 융합해내는 역량을 처음부터 ‘기본값’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서양의 ‘고전(liber classicus)’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작품이 오늘날 의미의 ‘고전’이 아니라 보다 더 높은 지평에 있는 ‘영원한 보물’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주장이 아마도 역사적으로 ‘고전’에 대한 초기 인식이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의 작품이 위대하다는 저자들의 생각을 투키디데스만 한 것이 아니고, 핀다로스(Pindaros) 호라티우스(Horatius) 같은 작가도 그러했는데,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위대한 보물로 간주하는 생각이 곧바로 ‘고전’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고전’ 이라는 개념은,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아니라 작품들이 아동과 청년들의 교육과 연결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classis(고전)’라는 말은 본시는 군사 전문 용어였다. 해군의 선단(船團)을 조직할 때 배의 규모와 역할에 따라 배들을 배치하는 데 사용하던 개념이었다. 처음부터 책의 등급을 매기는 데 사용된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책의 등급을 매긴 개념은 ‘ordo(위계)’였다. 이 개념에 따라 문학·역사·철학 각 분야 최고의 작가들과 작품들의 등급을 나눈 학자는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였다. 그런데 ‘ordo’ 개념도, ‘classis’ 개념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사회적인 신분을 구분할 때 사용되던 말이다. 이런 까닭에, 사회적 신분 체제에 빗대어 책의 등급을 매기려 했던 퀸틸리아누스의 시도는 후대 학자들에게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이른바 책에 대한 등급을 매기려는 시도가 다시 눈에 띄기 시작하는 때는 18세기였다. 1768년에 출판된 서양 고전 문헌학자 룬켄(D. Ruhnken)의 『그리스 연설가들에 비판적인 고찰』에서 ‘카논(canon)’이란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원래 ‘카논’은 그리스어로 규범을 뜻하는데, 룬켄은 이를 모범으로 따라야 할 대상 정도의 의미로 사용했고, 이를 책의 등급 매기기에도 적용했다. 하지만 고전을 지칭하는 명칭 경쟁에서 ‘canon’(경전, 정전)은 ‘classis’에서 파생한 ‘classicus’라는 말에 밀리고 만다. ‘고전’을 통칭하는 전문 용어로 ‘liber classicus’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이 담고 있는 보편 정신, 보편 논리의 힘
어느 문명이든, 혹은 어느 역사든, 혹은 어느 문화든, 그것들이 오래가고 멀리 퍼지려면, 기원의 문제나 출처의 문제를 넘어서는 힘을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이 다름 아닌 말의 힘에 담긴 보편 정신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실례가 원래 이교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중세 내내 기독교를 위해 봉사해야 했던 사실일 것이다. 가까이는 『기해박해 증언록』에서 순교자 유진길 성인이 언급한 “생혼(生魂), 각혼(覺魂), 영혼(靈魂)”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 나오는 식물혼, 동물혼, 인간혼을 생혼, 각혼, 영혼이라는 명칭으로 유포시킨 이는 샴비아시(Sambiasi)이고, 그의 책 『영언여작(靈言?勺)』에서 였고, 그것이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거쳐 동양에 닿은 것이다. 유진길 성인이 『천주실의』나 『영언여작』을 먼저 읽지는 않았겠으나 아주 우연히 접하게 된 종이에 쓰인 생혼, 각혼, 영혼이라는 세 단어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이다. 바로 말의 힘, 그 위력이다. 어느 문명이든, 혹은 어느 역사든, 혹은 어느 문화든, 그것들이 오래가고 멀리 퍼지려면, 기원의 문제나 출처의 문제를 넘어서는 힘을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이 다름 아닌 말의 힘에 담긴 보편 정신이다. 이런 보편 정신과 보편 논리를 가능케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학문이 한국에 오기까지는 어언 2,500여 년이 걸린 셈이다.

왜 고전인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지은이는 세네카의 말을 빌려 말한다. 결국 많이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고. 또한 삶에 중요한 것을 끊임없이 물으면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유인즉, 인생이 짧기 때문이다.
세네카가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내면적으로 단단하고 실속 있게 사는 사람이다. 적어도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잡사에 매심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책을 왜 읽어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서 해명된다. 인생을 실속 있게 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잡사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세네카는 이런 때 제대로 생각하고 의미 있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일갈한다. 책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고전이 다 고전인 것이 아니다. 생각하고 물을 때에 고전은 고전이 된다. 좋은 사람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될 때에 고전이 된다는 말이다. 짧은 인생, 실속 있게 살도록 돕는 것이 고전인 셈이다. 그나마 삶에 중요한 물음들을 제공하는 것이 고전이기에.

우리의 현실과 고전 읽기를 바탕으로 한 인문 교육의 필요성
한국 사회는 이제 성장 중심 사회에서 성숙 기반 사회로 전환이 시급하다. 물신 사회를 넘어서서 인문 정신이 힘을 발휘하며 정신성과 물질성의 균형을 유지함이 절실한데, 그 균형을 잡아줄 정신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 자체도 없는 형편이다. 여기에서 사회의 성숙이라 함은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를 넘어서서 보편적 가치와 이념이 상식과 양심의 기준이 되는 시민사회로 나아감을 뜻한다. 또한 한국 사회가 생존 중심 사회에서 생활 중심의 사회로 전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 사회가 성장에서 성숙으로 나아가는 데에 고전 교육이 앞에서 언급한 큰 문제들을 당장 해결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더 따져볼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21세기와 그 이후의 세기를 위해서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과 한국 사회의 내부 통합, 분단된 국가의 통일, 동아시아 평화 체제 구성을 위한 기본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 고전 교육이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전과 인문은 삶의 실제와 분리된 채로 고고하게 존재하거나 단지 고등 학문의 바탕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개인 차원부터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사람다운 삶과 사회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 책의 말미에서 우리 사회가 지금과 다른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교육 개혁이 당장 어렵다면 먼저 고전 읽기 기반 인문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은 ‘생애 전반에 걸친 교육’이어야 하고, 초등교육과정부터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사람다움의 무늬〔人文〕가 누구에게나 자율적이고도 행복한 삶의 밑천으로 제공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책속으로 추가
●고전은 이러한 중국의 역사를 창출해낸 배후였다. 상극을 융합하고 모순을 품으며 이단을 껴안는 일은 매번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수행됐다. 순자는 공자를 재해석하였고 정현은 유가를 법가로 재해석하였다. 하안과 왕필은 도가로 유가를 다시 빚었고, 주희와 왕양명은 유가에 불가의 장점을 불어넣어 새로운 유가, 곧 신유학을 버무려냈다. 그만큼 고전의 품이 넉넉했음이다. 그렇게 고전은, 노자가 말한 바다였음이다. 만물을 받아들이고 품고 변이를 일으켜 다시 내보내는 바다처럼, 고전에는 제국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열린 이념을 때에 맞춰 빚어내는 역량이 오롯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2,000년을 상회하는 중국 제국의 역사를 빚어낸 숨은 손은 오늘날 ‘한낱 고전’이 된 고전이었던 것이다. - p. 73

●『묵자』의 굴곡진 운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진 제국을 이어받은 한 제국도 유교의 이름으로 『묵자』를 배척했다. 그 이후 거의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묵자』는, 역설이게도 맹자가 그 이름을 거론하며 핵심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해준 덕분에 그 존재가 잊히진 않았지만 텍스트 자체를 찾는 손길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청대 중엽에 이르러 고증학자들의 손에 의해 『묵자』가 복구되기 시작했다. 물론 너무 오랜 기간 동안 홀대되었던지라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전해지는 텍스트를 최대치로 봉합하는 데엔 나름 성과가 있었다. 다만 이는, 고증학자들이 『묵자』의 사상에 동의했기에 빚어진 현상은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한자의 옛 뜻과 발음을 규명하는 데에 있었다. 그리하여 오랜 옛날의 책이라면 그 내용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고증학의 재료로 끌어왔는데, 마침 그들의 눈에 묵자가 포착되었던 것이다. - p. 85

●실제로 한 무제 같은 군주는 공자에서 순자로 이어지는 계열을 제국의 최고 통치 이념으로 설정한 후 『맹자』는 축출해야 하는 제자백가의 하나로 묶어버렸다. 『맹자』의 굴곡진 운명은 이렇게 본격화됐다. 공자의 적통임을 주장했음에도 경서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채 1,000여 년의 세월을 보낸 후 『맹자』는 송대에 들어 『논어』에 버금가는 경서로 화려하게 부활되었다. 특히 외래 사상인 불교의 형이상학과 경쟁하고자 했던 송대 성리학자들은 형이상학적 지평을 넓힐 여지가 풍부했던 『맹자』에 주목했다. 서역에서 들어온 불교에 맞서 중원 고유의 유교를 수호하고자 했음이다. 그 결과 『맹자』는 『논어』·『대학』·『중용』과 함께 사서로 병칭되며 오경에 우선하는 성리학의 경전으로 거듭나 지금에 이르고 있다. - p. 85

●결국 똑같이 책을 읽는다고 해도, 설령 그것이 경전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읽기를 기반으로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사뭇 다른 삶의 양태가 또 학문 세계가 빚어졌음이다. 주희는 경전과 치열하게 만나 경전의 주석을 썼고, 양명은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써냈다. 그렇기에 양명의 삶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책으로 후학들에 의해 기념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삶이 곧 새로운 책이 되는 회로의 구현, 이것이 주희와 다르게 경전을 기념하는 양명의 방식이었다. - p. 125

●서양의 최고 고전인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지은 혹은 엮은 호메로스(Homeros, 기원전 8세기)도 이 작품들을 만질 때에 이것들이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이름을 무엇이라 불렀든 간에, 자신의 작품이 시간이라는 망각과 망실의 폭압을 견디고 후대에도 사랑받는 작품이 되기를 염원하는 희망이 명시적으로 언표된 작품은, 적어도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투키디데스(Thucydides, 기원전 454~기원전 399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이다. - p. 139

●어느 나라이든 각기 문화의 전성기가 있다. 전성기를 바라보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대체로 그 나라의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의 넓이, 깊이, 높이가 최고조에 이를 때를 사람들은 고전기라 부른다. 기원전 5세기와 4세기가 그리스 문화의 고전기에 해당한다. 운문에서는 비극과 산문이, 산문에서는 역사와 철학이 최상의 수준에 도달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 p. 176

●이런 희생을 통해서 말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책들도 자신만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의 의미로 말이다. 얼핏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독자의 이해 능력에 따라 책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책 내용에 대한 독자의 이해와 사랑이 관건이지만 ‘책들도 자신만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책 자체의 생존, 즉 전승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 p. 187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가 인쇄기를 발명한 해는 1439년이다. 덕분에, 책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지식의 대중화가 가능해졌다. 책의 보급은 고립 단위로 단절된 유럽의 도시와 지역을 하나의 문화 공동체로 묶기 시작한다. 또한 인쇄소가 있는 곳에 대학이 서고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그 결과, 서양은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경제적으로 산업화와 시장경제가, 문화적으로 개인의 발견이, 사회적으로 시민 사회가 등장하게 된다. 가히 문명사적인 전환이라 하겠다.- p. 211

●알두스가 출판사를 처음 차린 곳은 마인츠 지역 근처의 스파이어였다. 그리스어 자판을 처음 개발한 사람도 프랑스의 니콜라 장송(Nicolas Jenson, 1402~1480)이었다. 그러나 알두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감하고, 시대의 전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갔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에는 그의 사업가적 기질과 도전 정신도 한몫 거들었다. 그가 거둔 성공의 배경에는 더 근본적이고 더 결정적인 힘이 있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인문 사랑(studia humanitatis)’, ‘책 사랑(philobiblia)’, ‘고전 사랑(philologia)’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사업가라 할지라도, 제아무리 재력가라 할지라도, 사랑(philia)이 없었다면, 그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단 뛰어난 학자들도 그에게 오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누구나 믿고 참조하는 정본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알두스가 그때 책들을 출판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세상은 어떠했을까. - p. 221

●그런데 세이렌이, 그러니까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다시 말해 책을 읽는 것이 도무지 유혹적이고 그래서 아직도 위험할까? 도무지 세이렌보다도 훨씬 더 매혹적이고 더 위력적인 중독물이 판을 치는 세상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이나 플루타르코스의 걱정은 이제는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책을 안 읽어서 더 문제이기에. 아니 세이렌 곁으로 다가가려고도 하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세이렌 곁을 지나가는 일도 드물지만 설령 지나간다 해도 오디세우스 자신이 스스로 귀를 밀랍으로 막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에 하는 말이다. 어쩌면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 자체가 호사스러운 짓일지도 모르겠다. 단적으로, 세이렌보다 ‘소녀시대’가 더 위력적인 시대를 우리가 지나가고 있기에.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위험한 축에 끼이지도 않는 세이렌에게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드는 길부터 찾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 아닐는지 싶다. - p. 233

●도대체 ‘좋은 사람’은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 좋은 사람 기르기의 방안을 처음 제안한 퀸틸리아누스의 조언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교육은 모방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모방하는 법이다. 문제는 모방할 만한 좋은 사람이 역사적으로 드물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검증된 좋은 사람을 담고 있는 그릇이 책이다. 좋은 사람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고전이다. - p. 234

●문제는 고전이 무엇인지일 것이다. 여러 의견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고전 읽기를 교육 모범으로 제시한 퀸틸리아누스의 생각을 소개하겠다. 그에 따르면, 고전이란 다섯 기준을 충족한 책을 말한다. 첫째는 시간의 검증을 견디어낸 책이다. 당대의 취향과 유행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는 소리다. 둘째는 유익해야 한다고 한다. 당연히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는 그렇다고 반드시 옛날 책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넷째는 탁월함이다. 최고의 시인, 연설가, 역사가, 철학자를 읽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마지막은 표현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한다. 말이 때로는 인품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고, 말이 때로는 능력을 발휘케 하는 수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p. 236

목차

들어가는 말

동양 편
1. ‘삶터의 벗’으로서의 고전
2. 경전 학습과 마음공부 - 학교에서는 어떻게 공부했나
3. 인간, 영혼에 역사를 품은 존재
4. 고전의 해석이 곧 권력
5. 고전, 제국의 역사를 빚어내다
6. 모난 책의 굴곡진 운명 - 박해 받은 책들의 운명
7. 미래 기획의 원천 『춘추』 - 시대의 부름을 받은 책
8. 황제와 고증(考證) - ‘죽은 책’을 되살리는 힘들
9. 살아감이 책이 되는 책 읽기 - 어떤 책들을 읽혔는가
10. 인문적 시민사회와 고전 - 고전 읽기 기반 인문 교육을 위한 제언

서양 편
1. ‘고전(liber classicus)’의 탄생
2. 인문학(humanitas)! 그 슬픈 탄생
3. 학교는 원래 돈과 경쟁의 싸움터였다
4. 나는 누구인가
5. 도서관의 탄생
6. 책들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7. 가장 비정치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8. 시대의 부름을 받은 고전들
9.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0. 왜 고전인가?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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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김월회(金越會)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20세기 전환기 중국의 문화민족주의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고대와 근대 중국의 학술사상과 중국문학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인문적 시민사회’ 구현을 위한 교양 교육과 인문 교육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살아 움직이는 동양 고전들』, 『춘추좌전-중국문화의 원형이 담긴 타임캡슐』, 『고전과 놀이』 등이 있으며, 『중국의 지식장과 글쓰기』, 『문명 안으로』, 『문명 밖으로』 등을 공동 저술하였다. 또한 「선진시기 복수의 인문화 양상」, 「‘G2’시대의 중국문학사 교학」, 「인문의 토대 변이와 중국어문학자의 향방」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도서소개

중국 학술 사상, 문학을 연구해온 김월회 교수와 서양 고전문헌학자 안재원 교수는 고전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짚어보는 한편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전 읽기를 바탕으로 하는 인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하며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동양(중국) 고전을, 다뤘고 2부에서는 서양 고전을 다뤘다. 1부와 2부는 각각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양 편은 김월회 교수가, 서양 편은 안재원 교수가 나눠 집필했고, ‘나가는 말’은 공동으로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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