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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

  • 로이스 W. 배너
  • |
  • 현암사
  • |
  • 2016-06-07 출간
  • |
  • 816페이지
  • |
  • 145 X 225 X 40 mm /955g
  • |
  • ISBN 9788932317946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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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20세기 초, 완고한 편견의 시대에 맞선 두 여성 인류학자의
비상한 사랑과 우정, 페미니즘, 학문적 성취의 연대기

문화인류학의 새 역사를 쓴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깊게 연관된 두 삶을 새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조명한 최초의 평전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 <서프러제트>의 주인공 모드 와츠는 말한다. “인류 절반의 손을 묶고, 입을 막을 순 없어요.” 이 영화는 여성 혐오가 만연하던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렸던 여성들의 잔혹한 투쟁기를 담고 있다.
같은 시기에 근본적인 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던 뉴욕에도 ‘인류 절반’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학계에서 여성의 ‘유리천장’을 깨부수려 노력한 두 명의 여성 인류학자가 있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섬세한 시적 감수성을 학문에 접목해 『국화와 칼』이라는 놀라운 역작을 남긴 루스 베네딕트와, 문화인류학의 대모로 불리며 생을 마칠 때까지 사회활동가로 활약한 마거릿 미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두 사람이 읽고, 쓰고, 작업하고, 즐겼던 광범위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의 줄기 아래에서 그들의 삶과 사랑, 학문 그리고 20세기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여성과 성에 관한 관념의 지형도, 즉 젠더의 지리학(geography of gender)을 탁월하게 그려 보여준다.

처음 공개된 서신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한,
깊게 연관된 두 삶의 궤적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에는 두 인류학자가 남긴 방대한 문서가 공개되며 새로이 밝혀진 연구 활동과 삶에서의 경험들이 담겨 있다. 저자 로이스 W. 배너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서신과 서류철을 총망라한 최초의 평전을 엮어냈고, 최근 수십 년간 출간된 레즈비언 역사와 퀴어 이론서도 폭넓게 활용했다.
두 사람은 인종과 양성의 평등, 문화의 상대성을 옹호한 선구자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이자 연인, 사제(師弟), 마음의 의지처이기도 했다. 20세기 뉴욕 및 사모아, 뉴기니 등을 배경으로 그들이 함께했던 시대의 여러 학자들, 자유연애의 다양한 인간관계, 그 시대의 지적 풍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20세기 초 문화인류학이 그린 청사진을 통해 인간의 사상, 행동의 의미를 심리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가 펼친 주장과 두 사람이 맺은 관계를 세심하게 정리했다.
이 책은 20세기 초, 남성중심적이었던 문화인류학 분야에서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두 사람의 삶과 이론을 밝혀내어 문화적 담론으로서 조명한다. 저자 로이스 배너가 이 책의 주된 목표로 꼽는 것은 ‘젠더의 지리학’(geography of gender)이 두 사람의 삶에 미친 영향을 기술하는 것이다. 젠더의 지리학이란 두 사람이 정치적, 사회적, 직업적, 가족적, 개인적 인생의 과정에서 헤쳐나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지형을 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자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기까지 경유했던 심리적 행로 역시 포함한다. 빈틈없이 세밀하게 엮은 자료들을 통해 두 사람 인생의 상호 연관성은 물론, 두 사람이 우정과 욕망, 헌신, 불화의 범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확대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여성의 권리의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두 여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유리천장을 깨부술 수 있었던 이유

두 사람의 조상은 식민화 초기에 영국에서 건너왔고 두 사람 모두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개척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공통적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개혁 운동에 참여했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저자는 두 집안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두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았다. 베네딕트는 생후 18개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유년기를 대부분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여자 형제들과 함께 보냈다. 그녀는 신경과민과 난청에서 오는 절망을 시작(詩作)으로 승화시켰고 그리스도 아래에서 새로운 ‘환상 세계’를 창조하여 그 안에 은신하기도 했다. 반면 미드는 신경질적인 아버지와 차갑고 냉담한 어머니보다 자애로운 할머니를 의지하며 자랐다. 학자였던 부모보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서민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좋아했고 이런 취향이 후에 미국 문화를 강의하고 분석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여성들이 맺는 낭만적 우정은 복잡하고 섬세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빅토리아조의 성별 사회화 방식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여자들 사이의 ‘낭만적 우정 풍토’에 참여했다. 이성애가 질서 정연한 사회의 필수 요소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다른 여자들과 낭만적 우정을 쌓는 것 역시 인정했다. 미드는 베네딕트의 딸이자 인류학 후배였고, 동반자이자 연인이었으며, 최고의 친구 그리고 나아가 베네딕트의 쾌활한 영혼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자유연애 사상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이이면서도 서로의 다른 사랑들을 지켜보았고 때로는 연애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 책은 20세기 초 문화인류학 분야의 위대한 두 여성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 사상, 문화를 소개하면서 두 사람의 소설 같은 삶과 지식인으로서의 행보, 연구 업적들을 조망한다.

미드는 일곱 살 때부터 여자에게 ‘묘하게 끌리는’ 감정을 느꼈고 이는 대중문화, 특히 문학 작품의 영향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녀는 중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마저리 바버, 마리 블룸필드 및 여러 여학생들과 성애적 우정을 쌓았다. [특히 미드의 바너드 대학에서의 ‘스매시(여성들이 맺은 낭만적 우정)’ 활동은 완다 네프의 소설 『우리는 다이애나를 노래한다』의 주요 내용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때의 여학생들은 이성애를 질서 정연한 사회의 필수 요소로 여겼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여자들과 낭만적 우정을 키웠다.
베네딕트는 유년시절에 예이츠, 산타야나, 니체, 월터 페이터 등의 작가들을 읽으며 ‘영혼을 되찾았다.’ 더 나아가 이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성별을 뛰어넘어 남성의 페르소나를 갖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는「보쿠 플랜트」(1916)와「메리 울스턴크래프트」(1918) 등을 지음으로써 남성의 권능에 저항하고 성별 횡단(gender crossing)을 찬양했다. 그리고 결혼과 모성을 찬양했던 ‘새로운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대학 시절 만난 스탠리와 결혼을 결심한다.

성적 반란의 시대에 몸소 보여주었던 자유연애
마거릿 미드는 바너드 대학으로 편입하면서 솔직하고 활달한 태도로 주도권을 장악했다. 레오니 애덤스, 데버러 캐플런, 엘리너 펠럼 코트호이어 등을 만나 ‘애시 캔 캐츠’(Ash Can Cats)라는 동아리를 만들었고 어머니 역할을 자처하며 동아리 성원들의 생활을 규율했다. 미드는 자신을 성 개혁 운동가로 묘사했다. 그 시기는 성적 반란의 시대였으며 자유연애 사상이 만연했다. 미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포도주다. 이 음식 저 음식에 따라 좋은 포도주를 가려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말마따나 그녀는 루서 크레스먼과 결혼 중에도 여러 여성들과 연애했고 그 이후에도 리오 포천, 그레고리 베이트슨과 결혼-이혼의 과정을 겪었다. 미드는 순간을 위해서 살았고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1922년 루스와 만난 이후부터 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2년 만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베네딕트는 “너의 사랑 속에서 행복할 때는 노래를 해. 우울할 때도 너의 사랑 때문에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하고 말이야.” 하고 자신의 깊은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드 역시 “루스, 당신을 알게 된 일은 신이 존재함을 안 것과 같은 평화로운 축복이에요.”라고 고백했다.
바너드 대학에서 수강한 사회과학 과목들, 특히 심리학이 미드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이때 미드는 이후 현지 조사에 도움이 될 장·단기 연구 방법 및 다양한 측정·검사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드를 사랑했던 것만큼 미드 자신이 느끼는 부담도 컸다. 그녀는 바너드에 편입한 첫해부터 오른팔 신경염 및 구역질, 악몽에 시달렸고 동성애 관계를 가졌던 마리 블룸필드가 자살하면서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드는 4학년 때 한 수업에서 드디어 운명적으로 베네딕트를 만나게 된다. 이때 베네딕트는 미드와 학문적 교감을 나누었고 그녀가 세라노 족장에게 들었던 ‘문화는 흙으로 만든 컵’이라는 은유는 문화가 통합된 전체라는 통찰로 이어졌다. 미드는 베네딕트가 품었던 이 비유를 접하면서 인류학이 지성과 상상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에서 궤를 같이하게 된다.

두 사람은 원주민 보호주의와 인종 차별주의가 득세하던 때에 미국에서 최초로 이에 반대했고 ‘미국식 인류학’을 출범시킨 프란츠 보애스를 사사했다. 그러나 보애스를 포함하여 당시 남성 인류학자들 중에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고 당시 부족사회들이 서구인 남성의 연구를 금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여성 인류학자에게 기대야 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여성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사업 분야로 진출하는 데에 반해 베네딕트는 동료 남성 인류학자들에게 이론적 합리성을 존중받았기에 학계의 지성소에 ‘감히’ 진입할 수가 있었다. 그녀의 학문 활동 초기에는 주로 남성, 즉 비전 퀘스트[영계(靈界)와 교류하는 부족사회 남성들의 의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베네딕트는 다른 여성 시인들과 달리 자신의 시편에서 남성적/여성적 측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애썼고 인생과 학문에서도 그랬다.
1925년 미드는 사모아의 청소년에 대해, 베네딕트는 주니 족 사회에 대한 현지 조사 연구를 수행한다. 이 책에서 저자 로이스 배너는 데릭 프리먼의 『마거릿 미드와 사모아』에 대한 비판을 미드의 환경적·학문적 배경을 근거로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미드와 베네딕트는 서로의 작업을 읽고 비판하고 정리해주었지만 결정의 순간에 미드는 언제나 베네딕트를 외면하고 남성과의 결혼을 택했다. 이는 1920년대 후반에 미국 문화가 점점 더 동성애를 적대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드는 처음부터 자신의 동성애 성향이 탄로 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베네딕트는 마거릿과 대한 안정감과 신뢰가 필요했다. 베네딕트는 마침내 미드의 잦은 연애에 대한 질투를 넘어섰고 미드에게도 자신에게도 자유로운 곳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문화인류학의 고전이자 개혁 운동의 교과서
『문화의 패턴』과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1934)과 미드의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1935)은 인류학 분야의 고전으로 1930년대 개혁 운동의 교과서였다. 베네딕트는 주니 족, 도부 족, 콰키우틀 족을, 미드는 아라페시 족, 문두구모르 족, 참브리 족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두 사람 모두 한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사람의 유형이 다른 사회에서는 정상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먼저 『문화의 패턴』은 여러 면에서 개혁적인 저작이었다. 이 책은 미국 문화의 공격적 남성성과 물질주의를 비판했고, 인종주의와 서양 사회과학의 유럽 중심적 편견에 대항하기 위해 문화 상대주의를 옹호했다. 버지니아 울프, 조지 산타야나, 로빈슨 제퍼스 등 많은 문인들의 영향을 받기도 한 베네딕트는 비정상을 이해하고 이성을 계발하며 듀이식 사회 계획을 채택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그녀는 저서에서 평원 인디언의 남자-여자(여성적 역할도 수행하는 남자)인 베르다슈를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는 남자-여자가 ‘자기 활에 두 개의 시위’를 걸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문화의 패턴』은 사회의 성격, 개인과 문화의 패턴 등으로 나눠 문화가 인간의 생활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었다.
미드는 두 번째 남편 리오 포천과 함께 뉴기니의 아라페시 족과, 사람 사냥이 막 종식된 세픽 강 유역의 문두구모르 족 연구 조사를 떠났다. 온화한 아라페시 족과 난폭한 문두구모르 족을 조사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문화적으로 설명하자는 기준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을 찾고자 했다. 뉴기니에서 돌아온 뒤에 이때의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가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이다. 여기서 미드는 베르다슈 및 동성애의 본질에 대해 베네딕트와 의견을 달리했다. 게다가 모든 입장을 아우르려는 과정에서 모순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그녀가 각종 사상의 조류가 모인 20세기 중반을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로이스 배너의 생각이다.

벗어날 수 없었던 성차별의 굴레,
그러나 결국 ‘유리천장’은 깨졌다

두 사람의 연구 성과가 두드러짐에도 당시 여자 교수진 처우는 형편없었고 베네딕트가 1930년대에 보애스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인류학과를 이끌 때에도 (남성) 교수 전용 식당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흥미진진하고 다면적인 인생 그리고 연구 업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여성 학자로서 받은 불평등한 대우를 결국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간다.
1940년대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두 사람은 사회과학자로서 ‘상아탑’에서 내려와 자신들의 학문을 현실에 대입하기 위해 정부 기관 연구에 참여한다. 두 사람을 비롯하여 베이트슨, 고러 등의 사회과학자들은 서로 협력하여 외국인들의 국민성을 파악해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전쟁정보국에서 수행한 연구 중 특히 베네딕트의 일본 연구가 가장 유명했으며, 『국화와 칼』은 미국에서 일본 국적자들을 인터뷰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일본 문화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 저작은 일본에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사람의 일본 문화 연구서였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문화를 파악하는 방법’의 효율성을 알리는 저작으로 전 세계에 유명세를 떨쳤다. 그들의 인류학 연구 활동과 생애사의 경험은 상호 연결되어 있었고 각자의 성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적 입장을 세웠다. 그들은 일생에 걸쳐 이성애의 ‘정상성’이나 일탈을 규정하는 데에 문화가 맡는 역할 따위의 사안을 고민했다. 지금까지 어떤 이가 인간을 규정하는 데에 평생의 시간을 들였을까.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과 심지어 사랑까지 모두 문화인류학의 한 발자국에 공헌했다. 서로 영혼을 나누는 ‘소울메이트’였던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이제 두 사람은 정말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됐다.

* 책속으로 추가
1900년쯤에 민족학자들은 ‘문화인류학자들’로 불렸다. 로버트 로위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일 때쯤에는 많은 대중이 ‘문화’라는 말을 탈엘리트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힘들고 지난한 투쟁이었다. 미드에 따르면 일부 사회학자들이 세기의 전환기에 문화라는 말을 그렇게 사용하기는 했지만 보애스의 제자들 다수가 개념을 재정의하는 과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 315~316쪽

보애스가 키운 남성 인류학자들은 그 한복판에 갑자기 등장한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들 가운데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줄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보애스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들을 받아들인 것 같다. 실제로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민족학을 탐구해왔다. ……부족사회들은 서구인 남성들이 자기 부족 여성을 연구하는 것을 금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여성의 역할을 조사하려면 여성 인류학자가 필수적임을 깨달았다.
- 320쪽

내면의 남성적 측면과 여성적 측면을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로 파악된 공격적 남성성과 사회를 구원하는 요소로 파악된 합리적 남성성을 궁구하는 과제, 아리아드네와 비어트리스가 체현한 여성성에서 남성성을 발견해 이항으로 구성된 전반적 개념을 뛰어넘는 일, 울프가 제시한바의 남녀 양성되기. 루스 베네딕트는 인생과 학문에서 이런 것들을 주요한 과제로 추구했다.
- 341쪽

자유연애를 바탕으로 영성에 몰두하는 청춘의 신낭만주의와, 여성들의 낭만적 우정이라는 빅토리아시대의 성별 사회화 제도 속에서 그 타협이 가능했다. 그 속에서는 단란하게 함께한다는 정서가 육체관계보다 더 중요했다. 루스와 나오미가 나오는 성경 이야기도 그렇고, 쇼니 족 여자에 대한 에반젤린의 사랑을 영적 합일감으로 재구성한 루스 베네딕트의 이야기도 그렇다. 마거릿과 베네딕트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했다.
- 441쪽

사실 두 사람은 이미 그들의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설정한 상태였다. 그것은 성적 개입이 없는 관계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헌신했고, 함께 구축한 정신적·지적 유대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베네딕트는 마침내 질투를 넘어섰다. 그녀는 마거릿에게 자유를 주면서 자신도 자유를 얻는 곳으로 나아갔다.
- 457쪽

당대 또는 우리 시대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베네딕트가 페미니스트였을까? 그녀의 얘기 속에서 여자들은 억압받는 존재이다. 베네딕트는 자본주의 아래 남자들이 아내들을 소유하고 보여주는 대상물로 여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썼다. 그녀는 모계 사회에서도 예외 없이 남자들이 권세를 누린다고 언급한다. 결국 모든 문화에서, ‘남자들의 특권이’ 여자들의 권리보다 ‘더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녀의 얘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권위를 누린다. 그녀들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것이다.
- 496쪽

마거릿이 「요약적 서술」을 쓰고 나서 얼마 후 그들은 M과 F를 포기하고, 나침반의 네 방위, 곧 동서남북 및 그 방위와 결부되는 특성들로 옮아갔다. 평온한 동쪽은 관조적인 종교와 연결되었다. 서쪽은 창조력이 풍부하고, 개방적이었다. 북쪽은 차갑고, 남근적이며, 군림하려 드는 특성과 결부되었다. 남쪽은 뜨겁고, 온갖 종류의 섹슈얼리티가 가득했다.
- 534쪽

오히려 미드는 기질을 논하면서 베네딕트의 문화 결정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생물학자들은 기질이 ‘기초대사’나 ‘내분비샘’을 통해 드러난다는 걸 입증하지 못했다는 게 베네딕트의 결론이었다. 미드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인간 본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변한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한발 뒤로 물러선다. “인간 본성이 완전히 동질적이라면 …… 일탈자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 567쪽

베네딕트는 인종과 젠더 사이에 유사점이 있을 수 있음을 잘 알았다. 그녀는 에임럼 샤인펠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수 집단은 자기들이 받는 억압을 내면화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주장이다. 페미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도 아주 최근에야 이런 입장을 비교적 분명한 형태로 개진했음을 상기해보라.
- 625쪽

1939년 10월에 미드는 베네딕트에게 이렇게 썼다. 자기가 신문을 조사하고 인터뷰를 해서 대중의 태도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이다. 그녀는 베이트슨, 고러, 베네딕트와 협력해 1년이 채 안 돼 국민성을 파악해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이걸 ‘거리를 두고 문화를 파악하기’라고 불렀다. 전쟁으로 인해서 고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면담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전문가들이 선호되었다. 자기 재량으로 해당 국가, 곧 조국의 문화를 분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달러드의 생애사 연구와 에릭 에릭슨 같은 심리학자들의 통찰력에 기대를 걸었다. 개인의 발달과 국민성이 밀접하게 연결되며, 육아가 문화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규정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 660쪽

미드가 식습관위원회 사무국장이 되었어도 인류학자들은 이른바 ‘식생활 습관’이라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쓴 자세한 아라페시 민족지를 보면 그 부족의 식습관과 의식을 분석한 내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드는 음식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식량의 생산과 분배와 영양 문제가 1941년에 아주 중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문화적 관점을 채택한 미드는 식량 문제를 지역민과 민족들의 풍습, 습관과 연계된 것으로 보았다.
- 666쪽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기본적인 심리 범주로 수치심과 죄책감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형태주의적 접근법을 수정해 사용하는데, 이는 랠프 린턴과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개발한 정교한 사회학 모형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베네딕트는 신분, 계급, 성별, 나이의 위계에 헌신하는 것이 일본 문화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일련의 책임 교환과 위계제 속에서 헌신하는 것으로 일본 문화의 패턴이 형성된다는 얘기인 셈이다.
- 668쪽

목차

감사의 말
프롤로그 시빌
1926년, 로마

1부 조상
1. 선구자들

2부 유년기
2.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 루스 베네딕트의 유년 시절
3. 눈이 맑은 아이
- 마거릿 미드의 유년 시절

3부 자아를 찾아서
4. 스매시
- 여성들의 낭만적 우정
5.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루스 베네딕트와 20세기 초의 페미니즘

4부 뉴욕에서 뉴기니로
6. 드포 대학교와 바너드 대학, 마거릿 미드의 형성
7. 일각수와 일출
- 인류학, 시, 젠더 그리고 루스 베네딕트
8. 자유연애와 사모아
9. 빵과 포도주
- 우정(1926~1931)

5부 지성과 감성
10. 활에 걸린 두 개의 시위
- 루스 베네딕트와 『문화의 패턴』
11. 세픽 강의 ‘구역’들
-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1부
12. 해노버 회의에서 발리의 마녀들까지
-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2부
13.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6부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14.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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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로이스 W. 배너는 럿거스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스크랜턴 대학교, 해밀턴 칼리지, 메릴랜드 대학교,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현재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역사 및 젠더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학협회의 첫 번째 여성 회장을 지냈고 이 협회가 미국학 발전에 탁월한 기여를 한 사람에게 주는 보드 피어슨 상을 2005년 수상했다. 미국 역사협회 태평양 연안 지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American Beauty』, 『In Full Flower: Aging Women, Power, and Sexuality』, 『Finding Fran: History and Memory in the Lives of Two Women』 등이 있다.

도서소개

‘인류 절반’의 목소리를 대신했던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삶.

근본적인 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던 뉴욕에서 ‘인류 절반’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학계에서 여성의 유리천장을 깨부수려 노력한 두 명의 여성 인류학자가 있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섬세한 시적 감수성을 학문에 접목해 ‘국화와 칼’이라는 놀라운 역작을 남긴 ‘루스 베네딕트’와, 문화인류학의 대모로 불리며 생을 마칠 때까지 사회활동가로 활약한 ‘마거릿 미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두 사람이 읽고, 쓰고, 작업하고, 즐겼던 광범위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의 줄기 아래에서 그들의 삶과 사랑, 학문 그리고 20세기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여성과 성에 관한 관념의 지형도, 즉 젠더의 지리학을 탁월하게 그려 보여주는 책으로 20세기 초, 남성중심적이었던 문화인류학 분야에서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두 사람의 삶과 이론을 밝혀내어 문화적 담론으로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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