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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날(양장본 HardCover) [일본소설일반]

혼자 있기 좋은 날(양장본 HardCover) [일본소설일반]

  • 아오야마 나나에
  • |
  • 예문아카이브
  • |
  • 2015-11-15 출간
  • |
  • 224페이지
  • |
  • 130 X 190 mm /349g
  • |
  • ISBN 9788927415350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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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나는 어릴 때부터 손버릇이 나빴다.
그렇긴 해도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훔칠 만한 용기는 없어서 대개는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소한 물건을 노려서 수집품에 보태 가는 게 어린 마음에도 나름 쾌감이었다. 새로 나온 필통이나 운동화 같은 게 아니라, 지우개나 붓, 클립 등등 딱히 필요도 없는 하찮은 잡동사니들을 모아 왔다. 기념사진을 찍는 기분으로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거나 책상 위에 방치되어 있는 자잘한 물건들을 교복 주머니 속에 몰래 감췄다. 훔치는 게 아니라 회수하는 것뿐이라고 자기 정당화를 해 가며 죄책감을 떨쳐 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게 쾌감을 한층 더 높여 주었다. 그와 동시에 왜 다들 그렇게 부주의한지 화가 나기까지 했다. ― 41~42pp.

“그 사람은 말이야, 다정하고 키가 크고 눈이 아주 부리부리한, 좋은 사람이었어. 대만에서 온 사람인데, 일본어도 잘했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다들 반대했고, 얼마 안 지나 그 사람은 자기 나라로 가 버렸지. 그때는 참 많이도 울었어. 세상이 다 싫어져서 평생 동안의 미움을 그때 다 써 버린 기분이었지.”
“평생 동안의 미움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난 이제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아.”
“어떻게 다 써 버렸어요?”
“잊어버렸지.”
“난 지금 허무함을 다 써 버리고 싶어요. 노인이 됐을 때 허무하지 않게.” ― 56~57pp.

“뭐라고 해야 좋을까 ……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제대로 좀 해.”
네네, 하고 고개를 끄덕인 나는 로비 구석에 있는 간식 코너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대로 하라는 건 무슨 뜻일까. 학교에 다니거나 회사에 근무하는 걸 말하는 걸까. 엄마도 명확한 말로 표현하긴 힘들었을 테지만, 그렇게 막연하게 얼버무리면 오히려 더 본질을 간파당한 것 같아서 짜증스러웠다. 자, 그럼 정작 그런 본인은 어떠냐고 반문하고 싶어졌다. ― 86~87pp.

■ 책 소개 제13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혼자 있기 좋은 날 장편소설



같은 피가 흐른다고 해서 마음까지 닮을 리 없다.
나는 사춘기 때부터 엄마의 생기발랄함이나 허물없는 붙임성이 싫었다. 이해해 주지 않는 것보다 이해해 주는 게 왠지 모르게 더 싫었다. 둘만의 생활에서 갑갑함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친구 같은 엄마를 목표로 삼았을 테지만, 피로와 세상 이목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없었던 엄마가 이도 저도 아니게 어중간해서 창피했다. ― 89p.

쫓을 것도 없고, 하나같이 다 떠나 버리는 것 같은데도 내 마음은 왠지 초조했다.
피아노를 때려 부술 듯이 마구잡이로 두들기고 싶다.
서랍장 안에 든 옷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싶다.
반지든 목걸이든 빌딩 꼭대기에서 마구 내던져 버리고 싶다.
담배를 한꺼번에 열 개비쯤 피우고 싶다.
그렇게 하면 다 떨쳐 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생활 같은 건 내게는 언제까지나 불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에 넣었다가 내던지고, 내던져지고, 정작 내던지고 싶은 것은 언제까지고 떨쳐 내지 못해서 내 인생은 온통 그런 것들로만 이뤄져 있다. ― 136p.

“할머니.”
“왜?”
“나, 이대로도 괜찮을까요?”
긴코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요한 시선이 내 얼굴과 어깨, 가슴과 다리 위로 붓질하듯이 차례대로 움직였다. 시선이 훑고 지나갈 때마다 옅게 색이 입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똑같은 질문을 했다.
“글쎄, 알 수 없지.”
긴코 씨가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몸을 뒤척이며 돌아누워 버렸다.
“할머니,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나 같은 건 금세 뒤처지고 말겠죠?”
“세상에 안이고 밖이고 하는 건 없어. 이 세상은 하나뿐이야.”
긴코 씨가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긴코 씨를 나는 처음 보았다. 그 말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곱씹자,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력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 168~169pp.

“난 여기가 좋아, 이 장소. 세계 속의 일본, 일본의 중심인 도쿄, 도쿄의 중심인 신주쿠, 신주쿠 중심의 중심인 것 같은 느낌이라서.”
여자가 담배를 빨아들일 때마다 입에 문 담배 끄트머리에서 조그만 오렌지색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다. 내 담배 끄트머리에서도, 사람들의 담배 끄트머리에서도 조그만 오렌지색이 점멸했다. 저 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 곳곳에 붙은 항공 장해등은 부르는 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 껌벅껌벅 붉게 점멸했다.
일본의 중심인 도쿄, 도쿄의 중심인 신주쿠, 그 신주쿠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지금 깨달았다. ― 208p.

목차

■ 혼자 있기 좋은 날
봄 | 여름 | 가을 | 겨울 | 봄의 문턱
■ 출발

작품 해설(노자키 간)
옮긴이의 말(이영미)

저자소개

혼자 있기 좋은 날(양장본 HardCover) 도서 상세이미지

도서소개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수상 당시 만 23세에 불과했던 작가의 나이와 이시카와 신타로와 무라카미 류를 위시한 심사위원들에게 “진정한 조숙함”을 느끼게 한다는 심사평의 대조로,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정교한 구성과 깊이가 느껴지는 문제의식으로 일본 현대 문학계를 대표하는 여류 작가의 탄생을 알린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이번 재출간을 계기로 미발표 단편 《출발》도 함께 수록되었다.
혼자 있기 좋은 날(양장본 HardCover) 도서 상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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